전작 <프린스 앤 프린세스>(1999)와 마찬가지로, 오슬로의 다섯 번째 장편 <밤의 이야기>는 중국의 그림자 연극에 영향을 받은 ‘실루엣애니메이션’ 형태를 띤다. 컷아웃과 스톱모션 기법이 적용됐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훨씬 더 정교해졌다. 3명의 애니메이터가 의견을 교환하면서 6편의 동화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의 패턴도 같다. 소년과 소녀가 캐릭터를 정하면, 노인이 아이들을 커튼 너머의 극장으로 보내준다. 티베트에서부터 캐리비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소에서 민담들이 수집되고 여기에는 현실의 인물뿐 아니라 전설 속의 존재들도 다수 등장한다. 많은 클리셰가 사용되지만 지루하지도 않다. 영화를 보다보면 음악과 그림, 인물의 말투가 주는 리듬감, 배경에 새겨진 이국적 그래픽에 홀려 어느덧 상영시간이 지났음을 아쉬워하게 된다.
미셸 오슬로는 메르헨의 재해석에 천부적 재능을 지닌 이야기꾼이다. 이번에도 익숙한 소재들을 다루지만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끝까지 극에 몰입하게 만든다. ‘늑대왕자’, ‘사슴공주와 건축가의 아들’ 에피소드에는 각각 중세의 공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우리가 알던 일반적 공주들과는 성향이 다르다. 앞선 이야기의 착한 공주는 나쁜 공주에 가려서 처음엔 보이지 않지만 스스로 ‘기사’가 되어서 왕자를 구해내고, 뒷이야기에서 공주는 닫힌 ‘성’에서 암흑기를 보낸 다음 자발적으로 왕자를 뒤쫓아서 마침내 스스로를 해방시킨다. 그녀들은 모두 자신만의 유니크한 이야기를 창조해낸다. 불교나 기독교, 회교 등 종교를 다룰 때도 오슬로는 중립적 시선을 유지한다. 소년과 소녀가 등장하는 간막극의 상황처럼, 책 속의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드러내는 것, 어쩌면 오슬로의 애니메이션은 그 지점에서 멈추어 우리를 기다리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