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다 도모아키는 은퇴 직후 시한부 선고를 받은 60대 후반 남자다. 위암 말기로, 암세포가 다른 장기에까지 퍼진 상태라 어떻게 손쓸 도리가 없다. 죽음을 피할 수 없다면,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 순리. 죽음을 일생일대의 프로젝트로 받아들인 도모아키는 세례명 받기, 손녀들과 힘껏 놀아주기, 여당이 아닌 야당에 투표하기, 장례식 예행연습하기 등 이제껏 외면했던 일들을 하나씩 차례대로 실행에 옮긴다.
<엔딩 노트>는 거창한 버킷 리스트가 아니다. 눈물로 쓴 병상일지는 더구나 아니다. 정작 죽음을 기다리는 당사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부정하거나 불공평한 죽음에 분노하지 않는다. 가족들이 몇년은 더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희망을 불어넣을 때, 도모아키는 그럴 리 없다고 잘라 말한다. 비탄 끝에 도모아키가 어쩔 수 없이 체념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얼마나 더 잘 살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해야 더 잘 죽을 수 있을까를 도모아키는 이미 깨달은 상태다. “거칠게 살아온” 죗값을 지금 치르고 있는 것이라는 도모아키의 고해는 제발 좀 살려달라는 애원이 아니라 남은 시간이라도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의지다. 딸이 죽어가는 아버지를 찍은 이 다큐멘터리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뛰어넘어 공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음을 삶의 연장이라고 받아들이는 도모아키의 특별하고 의연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삶이 죽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삶을 위무할 때, <엔딩 노트>는 곧 ‘오프닝 노트’다. 가와세 나오미(<벚꽃 편지>), 이와이 슌지(<이치가와 곤 이야기>), 고레에다 히로카즈(<걸어도 걸어도> <공기인형>) 등의 감독들에게서 연출을 배웠던 스나다 마미는 최대한 인물에 가깝게 다가가되, 존엄을 침범하지 않는 사려 깊은 거리두기로 아버지의 마지막을 배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