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보다 더 하고 싶었던 이야기. 감독직 수락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호빗>의 공식적 입장 표명은 이렇다. 그건 모르겠다만, 확실히 피터 잭슨이 <반지의 제왕>보다 더 욕심을 부린 건 분명해 보인다. 애초 2부작 제작이 3부작으로 늘었고, 초당 24프레임이 48프레임이 됐다. <호빗>의 제작 마디마디엔 고비가 있었고, 피터 잭슨은 그 위기의 순간에 굽히지 않고 강행을 택했다. 내용은 아무리 봐도 아이들 침대 머리맡에서나 읽어줄 동화책인데, 규모는 이미 그 수용 범위를 벗어났다. 솔직히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우린 이미 <반지의 제왕>을 한참 돌아와, <킹콩>과 <러블리 본즈>와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을 거친 관객이다. 피터 잭슨 감독에게 <호빗> 제작 전말을 들었다.
-반지 원정대만큼이나 제작까지 험난한 과정이 아니었나. 제작사와의 소송건, 제작에서 감독직으로 전환 등 그간 사건이 많았다. 이렇게 멀리 돌아서 결국 감독직을 맡게 된 데 대해 ‘운명’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처음엔 제작에만 관여하려고 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7년 동안 만들면서 감독을 했고, 이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끌어냈다고 느꼈다. <호빗>을 다시 감독함으로써 10년 전에 만든 내 전작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망설였다. 물론 감독 직은 기꺼이 내린 결정이었고 후회하지 않는다. 촬영장을 누비며 일하는 건 즐겁고 굉장한 경험이었다.
-마이클 베이 감독이 인터뷰에서 당신이 <호빗>을 만드는 건 프랜차이즈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던데. <호빗>에 매달리게 된 데는 어떤 욕심이 가장 컸나. =빌보 배긴스에 대한 욕심이 가장 컸다. 빌보는 존재감이 큰 캐릭터였다. 이안 홀름이 연기한 빌보는 유쾌한 괴짜 캐릭터였다. 이번엔 그의 젊은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거다. 마틴 프리먼이 이안 홀름에 이어 캐릭터를 맡았고 젊은 시절의 독특한 호빗 역을 새롭게 선보이게 된다. 빌보는 늘 명랑한 캐릭터다. 세상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을 짊어져야 했던 프로도처럼 괴로움을 이고 사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좀더 유머러스하고 경쾌하다.
-앞서 제작자로 참여한 <틴틴: 유니콘호의 비밀>부터 관객 타깃층이 확실히 낮아졌다. <호빗>의 경우엔 영화의 분위기를 정리하자면 어떤가. =처음 <호빗>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그 문제에 맞닥뜨렸다. <반지의 제왕>에 참여했던 제작팀들이 <반지의 제왕>과 같은 세계로 돌아가 60년 전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데 역점을 뒀다. 코믹한 요소는 많으나 제작자로서 코믹하게 보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지의 제왕> 3부작과 똑같은 스타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책의 이야기와 톤을 존중해 그대로 전달하면서, 10년 전에 우리가 스크린으로 창조한 고유한 중간계의 세계도 간직하려고 했다. 하지만 캐릭터는 좀더 코믹하다. 영화의 색깔을 정하는 건 캐릭터이지 감독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영화를 보면 중간계로 돌아온 느낌을 확실히 받을 수 있을 거다.
-애초 2부작 대신 3부작 계획을 발표했다. ‘겨우 300쪽 원작’으론 무리다, 라는 반대도 적지 않았고, 추가 예산 문제도 큰 부담이었다. <반지의 제왕>이 방대한 원작을 압축하는 과정이라면, 이번엔 적은 분량의 원작을 스크린에 확장하는 경험이다. 정반대의 작업이었다. =<호빗>에서 아쉬운 여백들을 채우기 위해 가능한 한 이야기들을 많이 추가하려 했지만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 결국 7월에 1편 편집본을 본 뒤 내년에 추가촬영을 해 <호빗>을 전체 3부작으로 구성할 방법을 논의했다. 내용은 충분했다. 원작 소설 외에도 1960년대에 톨킨이 소설 <호빗>의 확장판을 계획하면서 남겨놓은 많은 글들이 있었다. 그 글들은 따로 출판되진 않았지만 확장판의 스토리 라인은 <왕의 귀환>의 부록에 12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삽입되어 있다. 굉장한 자료였다. 톨킨이 남긴 글들을 좀더 영화화할 수 있게 된 가치있는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반지의 제왕>을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도 있지만, 반대로 <반지의 제왕>이 <호빗>의 밑거름이 되어준 부분도 클 것이다. =시작부터 이미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건 역시 <반지의 제왕> 덕분이었다. 촬영을 시작하면서 어떻게 찍을지를 고민할 때 <반지의 제왕>을 만들며 축적된 경험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반지의 제왕>은 <호빗>의 훌륭한 샘플이었다. 그 이야기로부터 60년 전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우리가 잘 아는 경험을 토대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는 것은 신나는 경험이었다.
-<반지의 제왕> 출연진이 대거 참여했다. 프로덕션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서 배우들을 마냥 붙잡아둘 수는 없었을 거다. =<반지의 제왕>은 총 266일에 걸쳐 촬영했다. 배우들과 가족처럼 지냈고, 그들과 함께 겪은 모든 일들이 소중했다. 배우들 모두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계가 더 끈끈했던 것 같다. 마치 대가족 같았다.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촬영이 끝난 뒤에도 서로 연락하면서 지냈다. 이번에 모이니 가족이 다시 만난 것 같더라. <호빗> 촬영장도 그때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됐다. 게다가 <호빗> 3부작도 <반지의 제왕>처럼 정확히 266일 동안 촬영했다! 강행군이었지만 모두들 열심히 해줬고 우리 관계는 더 견고해졌다.
-빌보 역으로 마틴 프리먼을 고집했다고 하는데, 그는 드라마 <셜록> 스케줄 때문에 처음엔 고사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설득했고, 그의 어떤 점이 빌보에 적역이었나. =마틴 프리먼에게 연락하니 이미 TV <셜록> 시즌2를 계약한 상태더라. 일정상 우리 촬영 스케줄의 중간 시점이니, 사실상 불가능한 캐스팅이었다. 우리로서는 마틴 말고는 다음 후보가 없으니 말 그대로 재난이었다. 그래서 어쨌냐고? 유례없이 촬영을 중지했다. 촬영을 절반쯤 한 뒤 6주 동안 촬영을 접고 완전히 쉬었다. 그 기간 동안 마틴은 영국에 가 <셜록> 시즌2를 찍었다. 그게 말이 되냐고? 마틴보다 빌보 역을 더 잘해낼 배우는 없다. 그는 감독으로서 더 바랄 것 없는 연기자다. 충분히 가치있는 일이었다.
-기존 영화의 1초 24프레임의 두배인 48프레임 적용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반지의 제왕>의 세월만큼이나 웨타 디지털도 발전했다. 진일보한 컴퓨터그래픽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단 점에서 기대가 크다. =순전히 기술적인 관점에서 3D 촬영을 즐겼다. 일단 촬영 자체를 3D로 진행했고, 덕분에 컨버팅 작업과는 전혀 다른 수준 높은 영상이 나올 거라고 기대한다. 초당 48프레임의 촬영기법을 선택한 것도 욕심을 낸 부분이다. 하이 프레임 레이트(HFR)는 3D영화를 볼때 경험했던 눈의 피로감을 완전히 제거해 3D에 가장 적합하게 만들어진 방법이다. 양쪽 눈이 부담없이 3D를 체험할 수 있다. 지금껏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실적인 화면이 될 거다. 확신하건대 관객은 실제 중간계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거다.
-그간의 과정을 팬들과 함께해왔다. 프로덕션 과정이나 결정과 관련된 것들을 비디오 블로그를 통해 공개해왔는데, 반론도 많고 소란스러울 여지도 있지 않았나. =1999년 처음 <반지의 제왕> 촬영을 시작할 때부터 우리를 지지하고 함께 성장해온 팬들에게 감사한다. 팬들은 우리 자신과 다르지 않다. 우리도 영화를 만들기 이전에 팬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우리는 영화를 만들게 된 운좋은 팬이었을 뿐이다. 팬들이 우리가 만든 영화를 즐겨주기 바란다. 단지 극장에 가서 영화를 봐주기를 바라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영화를 만드는 동안 가졌던 이 즐거운 경험을 함께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