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영국 개봉 당시 <인디아나 존스>에서 삭제된 장면.
심판의 날들은 지나갔다. 영국필름등급위원회(BBFC)가 지난달 패트릭 스와퍼의 위원장 임명 이후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10년간 BBFC를 책임졌던 쿠엔틴 토마스 경의 뒤를 이을 스와퍼는 형사법원 판사 출신으로 수년 전부터 BBFC의 비공식 자문 변호인으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특히 폭력적이거나 퇴폐적이라고 판단되는 공공 상영물 허가와 관련해 많은 조언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위원장으로서의 그는 15세 관람가 이하 등급의 영화들과 영화 외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전반에 관한 정보 제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현재 “유도기”를 갖고 트레이닝 중인 그는 아이들이 보는 영화에 언제 “위험한 장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나 “따라하지 마시오”와 같은 경고문을 다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고. 더불어 그는 에드 바이지 문화부 차관이 월초에 공표한 대로 DVD, 온라인 게임 등까지 포괄할 수 있는 등급 체계 마련에도 힘쓰고 있다.
BBFC의 이같은 역할 변화는 자유주의 사상의 확산에 따라 검열의 의미도 축소돼왔기 때문이다. BBCF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1970년대에는 심의 신청 영화들에 평균 4분의 1에 달하는 분량 삭제 요청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현재는 그 비율이 1%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도 권장사항이다. 그런 분위기의 변화 속에서 토마스 경 시절에는 가스파 노에의 <돌이킬 수 없는>과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 같은 작품들이 무삭제 버전으로 개봉되기도 했다. 지난해 제작된 <인간지네2>처럼 등급 보류 판정을 받는 영화도 여전히 있기는 하나, 전반적으로는 BBFC의 역할도 검열보다 올바른 소비에 대한 가이드라인 제시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고 있다. 한편 스와퍼의 선임과 맞물려 BFI는 런던에서 ‘언 컷 시즌 오브 필름즈’ 기획전을 연다.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을 꺼내는 장면을 복구한 <인디아나 존스> 등 삭제 버전으로 개봉됐던 작품들이 대거 상영된다.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의 과도한 간섭으로 논란이 일었던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