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K 조정준 대표, 명지대 임승빈 교수, 국민대 황승흠 교수가 발제를 하고 있다.
“현재의 영화진흥위원회를 영화와 방송 그리고 영상을 포괄할 수 있는 영화/영상진흥위원회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영화와 드라마 양쪽을 포괄할 수 있는 지원제도로 영상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영화계와 학계로부터 나왔다. 지난 11월8일 CGV여의도에서 ‘한국영화영상의 미래 10년을 말한다!’라는 제목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이하 제협),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이하 PGK),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독립영화협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등 5개의 한국 영화산업 주요 단체가 주최하고,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한국대중문화예술산업총연합이 후원한 자리였다.
영화인회의 이춘연 이사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이날 컨퍼런스는 PGK 조정준 대표, 명지대 행정학 임승빈 교수, 국민대 법대 황승흠 교수의 발제와 영화 및 방송 산업 관계자들의 종합 토론으로 진행됐다. 조정준 대표는 “관객은 극장, IPTV, 모바일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영화와 방송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비하고 있고, 창작 주체들 역시 영화와 방송을 구분하지 않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작업하고 있다”며 “영화와 방송의 융합이 대세”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현재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극장용 영화에 대한 지원 정책을 운용하고 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용 드라마에 대한 규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런 인위적인 눈금부터 없애고 과감한 지원 정책을 펼쳐야 한다”며 “영진위는 영화와 방송을 융합할 수 있는 영화/영상진흥위원회로 재편하고, 정부의 각 기관에 나뉘어 있는 영상산업 관련 지원금을 통합해 연간 2천억원 규모(영진위 영화발전 기금 450억원, 투자조합 출자금 400억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금 1천억원, 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콘텐츠제작지원금 180억원)의 진흥 재원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임승빈 교수는 “영화와 방송 콘텐츠가 최초의 유통망이 다를 뿐 2차시장(IPTV, 케이블 채널, 모바일 등)부터는 그 구분이 무의미해진 만큼 정부의 거버넌스 체계 역시 변화해야 한다”며 “영진위를 영화/영상위원회로 확대 개편해 양쪽을 효율적으로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발표했다. 황승흠 교수는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영비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현재 산업진흥체계는 영비법에 의한 영화산업 진흥과 일반법인 ‘콘텐츠산업진흥법’에 의한 영상산업 진흥으로 나뉘어 있다. 비디오산업이 사실상 소멸됐고, 산업의 흐름상 영화와 영상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있어 법을 개정해 영상산업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진흥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차기 정권 인수위에서 영진위 변화 모색”
종합토론에서 나온 의견도 위의 발제자들이 발표한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협 차승재 회장은 “영진위를 단순히 확대하자는 게 아니라 영화와 방송 영상을 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형식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부회장인 송병준 그룹에이트 대표 역시 “촬영장비가 디지털화되면서 영화 스탭이 방송쪽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 양쪽이 그릇만 다를 뿐 그 그릇에 담기는 내용은 같다”며 “이제 그 그릇이 정비되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저마다 의견이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영화와 방송 양쪽을 융합해 산업 관련 기금이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의견만큼은 공통적이었다.
영화계가 새로운 진흥기구의 필요성을 제안하는 모양새가 다소 갑작스러워 보이긴 하나 주최쪽은 “이같은 제안을 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준비했다”고 밝혔다. 당시 “제협과 PGK가 주축이 되어 한국영화영상미래정책 기획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기획단은 이날 자리에서 발제를 한 두 교수를 비롯한 제협 차승재 대표, PGK 조정준 대표, 부산국제영화제 이용관 조직위원장, 인디플러그 김정석 대표 등 학계와 영화계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됐다. 지난 7개월 동안 이들은 “아시아 영화산업의 허브로서의 거점 마련, 원활한 해외 공동제작, 스탭들의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을 위해서 영화와 방송의 융합이 필요하다. 그리고 관련 법 체계의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모은 뒤 “영화/영상산업의 종사자 모두 동반 성장이 가능한 시스템을 연구해 컨퍼런스를 준비했다”고 한다.
산업 거버넌스 체계 변화에 대한 영화계의 요구에 영진위는 일단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컨퍼런스가 끝난 뒤 영진위 김의석 위원장을 잠깐 만날 수 있었다. 김 위원장은 “(영화계가 이런 요구를 하고 있는데 영진위의 계획은 무엇인가라고 묻자) 어디까지나 결정은 윗선인 문화체육관광부가 한다”며 “오늘 자리는 외부(영화계)에서 제안하는 내용을 듣는 자리”라고 대답했다. 그는 “구체적인 변화는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야 알 수 있겠으나 영진위가 어떤 형태로든지 변화할 가능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영진위의 한 관계자는 “대선이 끝난 뒤 새 정부의 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 영진위가 어떤 형태로 변할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다. 영진위가 예측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일단 공을 차기 정권에 던질 계획이다. 차기 정권 인수위원회가 꾸려지면 정부 각 부처간 개편 논의가 들어갈 것이고, 그때 이 문제에 대한 그림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조직을 확대하는 방식,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영진위가 통합하는 방식, 아예 새로운 영화영상산업을 위한 정부 진흥기구의 탄생 등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예상했다. 영진위 역시 이번 영화계의 요구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효율적 재원 배분의 필요성과 시장의 확대
이번 컨퍼런스를 두고 영화인들은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원승환 전 배급지원센터소장은 “IPTV, 모바일, 웹 등 2차 부가판권 시장을 비롯한 다양한 플랫폼이 생기면서 영진위가 효율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2차 부가판권시장은 방송통신위원회의 관할이기 때문”이라며 “어쨌거나 영진위가 됐든, 새로운 영화영상 산업 진흥기구가 됐든 하나의 기구가 영화와 방송 모두를 관리할 수 있게 되면 기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시장의 파이가 어느 정도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분석했다. 한 영화인은 “그동안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많은 재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재원이 필요한 여러 산업 구성원들에게 효율적으로 분배하지 못한 부분이 분명 있다. 어떤 형태가 됐든 한쪽이 영화와 방송 모두 관장할 수 있다면 기금이 더 원활하게 분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예상했다.
영진위의 이번 조직 개편 가능성을 두고 항간에는 1999년 영화진흥위원회가 탄생했을 때만큼 큰 조직 개편이 될 거라는 얘기도 있다. 이번 컨퍼런스가 주최쪽이 공표한 대로 영화와 방송이 융합되고 있는 최근의 산업 흐름에 맞는 영화영상산업 진흥기구 탄생의 출발점이 될지는 일단 두고볼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