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재밌게 본 미국 드라마가 <뉴스룸>이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바꾸면 <9시 뉴스데스크> 정도 되는 내용인데, 재밌을 거 하나 없는 소재를 가지고 그처럼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 감탄을 하면서 봤다. 매 편이 모두 인상적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 토론회 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뉴스 제작진은 기존의 뻔한 토론 대신 그야말로 후보의 가슴을 후벼파는(?) 날카로운 질문들로만 이루어진 토론회를 준비한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존의 TV토론이 신변잡기 위주인 연예토크 프로그램처럼 연성화되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토론으로는 유권자가 어떤 후보를 선정해야 하는지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기에 제작진은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토론회를 마련했던 것.
재밌는 건 (비록 드라마라는 픽션이긴 하지만) 그 토론을 진행하는 사회자인 앵커가 공화당 지지자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새누리당 지지자인 앵커가 새누리당 경선 후보들을 불러다가 그처럼 곤혹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토론회를 준비한 것이니, 그야말로 놀라운 설정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앵커는 그렇게 해야만 제대로 된 공화당 대선 후보를 선출할 수 있고, 그렇게 뽑은 후보만이 본선에서 경쟁력을 가진다고 믿었다.
물론 토론회는 토론 리허설을 미리 본 참모에게 거부당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질문만 던져주는 다른 방송사에서 토론회를 개최한다. 그것을 씁쓸하게 지켜보는 주인공의 시선 너머로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식의 한심한 질문들만 열거되는 토크쇼로 전락한 토론회가 비치며 해당 편은 끝나는데, 아마도 그렇게 선출된 공화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를 이길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11월5일 현재, 우리나라 대선은 한달 남짓한 시간만을 남겨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차례의 TV토론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사들을 보니 한 후보쪽에서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TV토론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3회의 TV토론만 막바지에 볼 수 있을 것이란다.
그러고 보니 제대로 된 TV토론이냐, 연성화된 TV토론이냐를 가지고 1편 분량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미국의 상황이 우리 입장에선 참으로 ‘배부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토론의 내용을 가지고 논쟁할 수 있는 수준조차 못된다는 자괴감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TV토론과 관련해 한 여론조사 기관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다. “TV토론이 있기 전까진 지지율에 크게 변화가 없을 것이다”라고…. 그러고 보면 유권자 입장에선 TV토론 외엔 후보들을 직접적으로 보고 듣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없다. 그저 언론을 통해서 걸러지고 만들어진 ‘이미지’에 근거하여 후보를 평가하고 판단할 뿐인데, 전문가의 예측엔 우리나라 언론이 결코 유권자에게 도움이 되는 <뉴스룸> 같은 날카로운 보도는 하지 않으리란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고 보면 TV토론 없는 대선은 언론보도, 여론조사 등과 맞물려 유권자를 활기찬 뉴스룸이 아닌 골방에 가둬놓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참으로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