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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정치가 영화를 도와줄 때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12-11-13

④정책-독과점 금지 등 다양한 제도 보완 필요

호황이 호기다. 그간 한국 영화산업이 양적인 성장과 질적인 향상에 비해 산업으로 요구되는 기본적인 틀을 갖출 시간이 부족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숱한 우여곡절과 부침의 시기를 지나 드디어 한숨 고를 시간이 찾아왔다. 몇년 만에 찾아온 영화산업의 긍정적인 지표들을 두고 그저 기꺼워하며 넘어가기엔 모처럼의 기회가 아깝다. 현재의 상황을 점검하고 기본적인 가이드라인을 세우는 것은 옳고 그름의 가치 판단도, 각 집단의 이해관계에 관한 문제도 아니다. 한국 영화산업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수적인 작업이다. 이 소중한 기회를 놓칠 수 없기에 현재 영화계 각 분야에서 준비 중인 제도적 보완책의 면면을 짧게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해보았다.

영진위, 표준계약서와 지원정책에 총력

현재 영화산업을 위한 제도적 정비는 크게 규제와 지원,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 중이며 그 주체는 각각 국회와 영화산업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맡고 있다. 우선 영진위가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정책들은 영진위의 이름에 걸맞게 주로 산업의 저변을 확대하고 지원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보연 영진위 정책센터장은 그 첫 번째 과제로 분쟁상황 발생 시 이를 조정할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따라 각 분야의 표준계약서 마련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2010년에 이미 완성된 투자, 상영, 근로분야의 표준계약서는 물론이고 표준 시나리오 계약서에 관해서는 현재 최종적으로 의견 조율 중이다. 또한 앞으로 표준 감독 계약서, 표준 기획개발 계약서, 디지털 온라인 시장 계약서 등으로 표준계약안의 영역을 확대하여 거래관계에 대한 기준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한 영진위는 불공정행위 신고센터를 통해 각종 불공정 행위에 대한 신고를 받아 권고조치를 취하고 있으며 최근 이를 강화하기 위해 규정을 다시 정비하고 홍보를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표준계약서나 신고센터 같은 경우 기본적으로 강제성을 갖지는 않지만 그때그때 역학관계에 따라 급변하는 영화시장 내에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최근 영진위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야는 영화시장 저변 확대를 위한 지원 정책이다. 주로 영화 제작의 허리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있는 중견 제작사들을 보조하기 위한 장치 마련에 집중하고 있는데, 제작사들의 안정적인 기획개발지원을 위해 조성된 모태 투자펀드나 적립식 지원제도가 그 대표적 예다. 모태 투자펀드의 경우 투자조합을 형성하는 데 있어 대기업의 자본이 유입되는 까닭에 대기업이 부당한 수혜를 입는 사례가 있어 이를 방지하기 위해 감시, 관리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 중이다. 프랑스의 자동지원제도를 차용한 적립식 지원제도는 제작사가 자기 자본이 없는 상황일지라도 지속적인 기획개발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기 위해 흥행매출의 일정 부분을 적립하여 이후 흥행 스코어에 따라 이를 차등지급하는 제도다. 결과는 지켜봐야겠지만 두 가지 모두 안정적인 자금창구를 확보하여 선순환 구조를 짜도록 도와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또한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최근 급격히 성장 중인 IPTV 등의 부가판권시장까지 영역을 확장하고자 애쓰는 중이다. 이는 예전 극장통합전산망을 구축했듯이 디지털 온라인 시장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매출, 정산 정보의 투명성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회, 독과점 금지법과예술인복지법 추진

반면 국회에서 추진 중인 법제들은 주로 규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소한의 사회안전망과 공정경쟁 체제를 구축하여 산업이 안정적이고 탄탄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것이 그 취지다. 준비 중인 법안들의 주요 골자는 산업의 양극화를 막는 독과점 금지법과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예술인복지법으로 요약된다.

독과점 금지법의 경우 제작, 배급, 상영의 수직계열화를 분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화산업예술의 특성상 소수의 독점으로 이루어질 경우 산업전반의 창의력이 저해될 것을 방지하고자 함이다. 현재 영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여 모든 방법과 가능성을 살피고 있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양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실효성있는 법안을 도출하는 데 있다. 특히 배급과 상영의 분리는 그 문제의식이 영화계 전반에 공유되었다는 판단 아래, 복합상영관에 일정 비율 이상 영화를 걸지 못하도록 규제하거나 예술영화에 다양성을 보장하는 쿼터를 보장해주는 등 여러 방면에서 방안을 모색 중이다. 경우에 따라 동시에 진행하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시장의 인위적인 개입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는 만큼 아직 구체적인 검토와 의견 수렴과정이 더 필요한 상황이며 소통을 통해 현실적인 방안을 다듬으며 신중히 접근한다는 입장이다. 물론 정답은 없고 한번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과정의 험난함이 걸음을 멈출 이유가 될 순 없다. 성장도, 분배도, 시장 확대도, 창구의 다변화도 모두 중요하다. 한발 한발 지치지 않는 끈기와 꾸준한 관심이 필요할 때다.

최근의 선전이 독점의 결과일 수도

최민희 국회의원 인터뷰

-최근 한국 영화계의 흥행 호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호황이나 불황이라는 표현은 피하고 싶다. 관객수가 많아졌고 영화 몇편이 대박을 터트렸다는 객관적인 사실 기술로도 충분하다. 연말에는 1억 관객을 돌파할 수도 있는 긍정적인 수치다. 다만 그것이 대기업 주도의 영화에 집중되어 있다는 게 불안감을 남긴다. 공정한 룰에 의해 경쟁했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되묻고 싶다.

-호황이 반드시 좋은 일은 아니라는 얘기인지. =최근의 선전이 독점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1천만 영화 2편보다 작은 영화가 여러 편 흥행하는 게 건강한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올해는 100만이 넘은 영화도 25편이나 된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소규모 영화들은 상대적으로 많이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25억원이었는데 2009년부터 지금까지는 15억원에 그쳤다. 그럼에도 높은 흥행수치가 나왔다는 건 대기업이 마음먹고 만들어낸 숫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앞으로 좀더 검증이 필요하다.

-누가 시장을 주도했건 결과적으로 흥행으로 이어졌다면 좋은 것이 아닌가. =대기업이 혼자 제작, 배급, 상영까지 한다면 올해 같은 성공의 결과가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모델이 한번 성공하면 <광해, 왕이 된 남자>식으로만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고 일시적으로는 규모의 경제에 따라 호황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다양성이 사라진 영화계가 질적으로 저하되리라는 건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어떤 대책을 준비 중인가. =복지와 규제,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규제에 대해선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쪼개서 독과점을 막으려 한다. 투자는 하되 제작을 제한할 수도 있고 배급과 상영을 분리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배급, 상영의 분리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본다. 방법에 대해서는 대기업을 포함해 한국영화제작가협회, 한국영화감독조합, 한국영화산업노조 등 다양한 집단의 의견을 수렴 중이다. 원론적인 법안이 아니라 실행 가능한 현실성을 갖추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복지는 예술인복지법을 통해 최소한의 안전망을 구축하려 한다. 개별 사안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을 통해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제도도 중요하지만 강제력이 우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실행 여부다. 양자 합의가 안되는 사이에서 강제성있는 법을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소통과 협의를 통해 실효성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영화계를 위해 당부의 한말씀 부탁한다. =당부보다는 감사하고 있다. 이런 조건에서 얼마나 좋아하면 영화를 계속 만들었을까, 어떻게 이런 조건에서 1천만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놀랍다. 밑바닥이 탄탄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계속 영화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 이제는 정치가 영화를 도와줄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안정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보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