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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 1천만? 우리와는 관계없는 얘기
김성훈 사진 백종헌 2012-11-13

②스탭-촬영부 10년차 K씨의 하루로 보는 현장 시스템의 실태

(사진은 기사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5년 전이나 지금이나 현장에서의 스탭 처우 개선은 이뤄진 게 없다.

*이 글은 현재 충무로 상업영화 현장에서 연출부, 제작부, 촬영부로 일하고 있는 스탭들을 취재해 재구성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을 왜 ‘지옥철’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군요. 하루를 시작하는 넥타이 부대와 달리 저는 아침 해를 바라보며 퇴근하는 길입니다. 새벽 6시가 돼서야 겨우 촬영이 끝났거든요. 원래 전날 밤 11시쯤 끝나기로 된 촬영일정이었어요. 그런데 여자주인공이 마시는 음료수가 투자배급사의 제품이 아니라는 이유로 재촬영을 했지 뭐예요. 망할 PS(프로덕션 슈퍼바이저. 현장에 파견되는 투자배급사의 담당 직원) 놈. 현장 올 때마다 계열사 음식과 음료수를 사오는 게 마음에 안 들던 참이었는데. 어쨌거나 밤샘 촬영을 했는데 왜 촬영버스나 택시를 타지 않냐고요? 대중교통이 다니는 시간대에는 ‘귀가비’ 1만원이 지급되지 않거든요. 새벽 2시나 3시라면 모를까. 물론 집이 과천이든, 평촌이든, 남양주든 전부 1만원만 받고 택시를 타야 하지만…. 그리고 촬영버스는 현장에 거의 없어졌어요. 지방 로케이션 때 촬영팀, 조명팀 등 기술 스탭은 장비를 싣는 차량을 이용하고, 연출부, 제작부 등 나머지 스탭은 제작부가 촬영버스를 빌려 태우는 정도입니다.

계약서엔 정확한 촬영기간 명시되어 있지 않아

아, 제 소개가 늦었네요. 현장에서 10년 가까이 촬영팀에서 일하고 있는 K입니다. 상업영화는 9편 가까이 했고요. 경력이 어디 내놔도 꿀리지 않고, 나름 일 잘한다는 소문이 나서 입에 겨우 풀칠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뭐, 많이 받을 때는 촬영 4개월 기준으로 편당 900만원, 적게 받을 때는 편당 650만원 정도표3 참조지만요. 생활비, 병원비 등 이것저것 쓰고 나면 그나마 일년에 300만원 정도 저축하는 수준입니다. 연출부는 저희보다 훨씬 못 벌어요표1 참조. 연출부 막내는 4개월 촬영 기준으로 200만원, 월 50만원씩 지급받아요. 그래서 경력이 거의 없는 학생을 주로 쓴다고 하더라고요. 투자배급사의 스탭 계약서에는 ‘2주 추가촬영 할 것’이라는 조항이 따로 명시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계약기간은 4개월이지만 실질적인 노동시간은 4개월 반인 셈이죠. 추가촬영에 대한 추가 인건비를 받아가면 되지 않냐고요? 누가 준답니까. 계약서에 촬영기간이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는 것도 문제예요. 촬영스케줄이 나오면 대략 촬영기간을 알 수 있는데, 그걸 계약서에 써주질 않아요. 그러다보니 다음 영화 스케줄이 애매하게 이어지는 경우에 대략 난감합니다. 5년 전 기자님은 막내 때 3개월에 500만원 받았다고요? 이보세요. 지금은 그때와 완전히 달라요.

그럼에도 이번 영화 시작하기 전 제작실장과의 미팅 때 까일 뻔했습니다. 투자배급사가 “개런티가 너무 많다”며 제작사가 올려보낸 스탭 임금 책정 리스트의 제 이름 위에 빨간 줄을 딱딱 그어 내려보냈대요. ‘얘는 비싸서 안된다’는 거죠. 촬영부 세컨드나 서드는 티가 잘 안 나니까 가격이 싼 친구를 써야 된다나, 뭐라나. 만만한 게 스탭 인건비죠. 그래서 요즘은 두편 정도만 참여해도 세컨드(촬영팀은 보통 4명이 한팀으로, 직급별로 퍼스트, 세컨드, 서드, 막내로 구성된다) 달 수 있답니다. 얘길 들어보니 CJ, 롯데, 쇼박스 등 그들은 자사 영화에 참여한 스탭들에 대한 정보들을 정리해놓은 데이터 리스트를 가지고 있대요. 왜냐하면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면 대기업의 인사이동이 시작되는데, 후임 담당자를 위해 스탭 정보를 문서화해놓는대요. 그 문서를 기준으로 스탭 계약을 하는 셈이죠.

날림이라도 빨리만 찍으면 좋다는 투자배급사

누구나 금방 세컨드가 되는 세상이다 보니 현장에서 일할 때 참 답답해요. 특히 ‘입봉’하는 촬영감독팀은 촬영팀 구성원의 경력이 짧다보니 정말 허술하거든요. 새로 출시된 카메라 장비를 쓰기로 했다면 미리 테스트를 하고, 카메라 매뉴얼 설정도 해야 하잖아요? 그걸 안 해놓고 현장에 왔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한테 이 카메라를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냐고 묻지 뭐예요. 전문성 따위는 개나 가져가버려 같은 거죠. 촬영감독이나 촬영팀뿐만 아니라 감독도 문제가 심각해요. 제가 지금 신인감독의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보통 마스터숏, 롱숏, 바스트숏, 클로즈업숏 순으로 찍잖아요. 이 감독은 콘티순대로 찍어요. 그래서 주연여배우가 “감독님, 콘티순대로 안 찍어도 상관없어요”라고 눈치줬는데, 눈치없는 감독은 “제가 헷갈려서 그래요”라고 대답했지 뭐예요. 제가 다 얼굴이 빨개졌어요. 그럼에도 투자배급사는 날림으로 찍는 감독이나 촬영감독을 선호하는 편이에요. 일단 빨리 찍으니까 좋고, 대충 찍어도 마케팅으로 포장만 잘하면 요즘 관객은 잘 모르거든요.

그럼에도 8월17일 임단협이 체결됐던 까닭에 스탭의 고용과 복지 문제가 나아질 거니 희망을 가지라고요? 글쎄요. 현장에는 임단협의 ‘임’자도 모르는 스탭들이 수두룩해요. 현장에서 촬영하느라 <씨네21>이나 신문 볼 시간이 어디 있나요. 촬영 쉬는 시간에는 전부 휴대폰으로 애니팡만 하는데요. 스탭 노조는 4대 보험 완전 적용, 영화산업표준계약서 적용, 산업 최저시간 급인상, 추가 인력 최저일급 지정 등 여러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죠? 그건 현장을 아직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예요. 일단 투자배급사는 스탭 노조에 가입한 스탭을 꺼려해요. 4대 보험 역시 제작사가 부담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어떤 제작자는 “4대 보험료를 내는 만큼 개런티를 깎자”고 그래요. 노동시간 역시 노조 권장 노동시간이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보통 24시간 밤샘 촬영하면 다음날은 무조건 쉬어야 해요. 그런데 지금 현장의 경우, 다음날 저녁이 콜타임이에요.

아, 이번 정거장에서 내려야겠네요. 다행히 오늘은 촬영이 없어요. 내일 촬영 준비 안 하냐고요? 안 그래도 현장을 떠나기 전 연출부, 제작부, 스크립터에게 내일 뭐 찍냐고 물어봤는데, 아직 회의 중이라 안 정해졌다네요. 5년 전 같으면 다음주 촬영일정까지 다 알 수 있었는데…. 일단 잠부터 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