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의 특성상 관람 전에 읽으면 감흥이 크게 반감됩니다.
말릭 벤젤룰 감독의 <서칭 포 슈가맨>은 1970년대 초 심금을 울리는 두장의 앨범을 내놓았으나 대중의 철저한 외면 속에 증발해버린 미국의 포크 록 뮤지션 시토 로드리게즈의 정체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미 제3자에 의해 완료된 추적 과정을 복기한 다큐멘터리다. 본국에서 사장된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민들레 홀씨처럼 한 젊은이의 여행 가방에 실려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날아들어갔고 악명높은 인종분리 정책과 표현의 자유 탄압에 저항하던 그 나라 사람들의 폐부를 찔렀다. 불법 카피를 통해 들불처럼 번져나간 로드리게즈의 음악은, 영화 속 증언에 의하면 정치적 저항운동의 깃발로 옹립됐고 남아공 대중음악의 지형도마저 바꾸어놓기에 이르렀다. 음악은 복음의 반열에 올랐는데 정작 뮤지션 본인의 신상은 알려진바 없는 희한한 상황은 ‘도시 전설’이 싹트는 토양이 된다. 급기야 남아공 국민들은 로드리게즈가 공연 중 무대 위에서 총기 자살 혹은 분신했다는 ‘카더라’를 진실로 믿어버린다. 세월이 흘러 마침내 남아공의 로드리게즈 열혈 팬 스티브 시거맨과 음악평론가 크레이그 바톨로뮤-스트리드롬이 뮤지션의 궤적을 찾아나선다. 라이선스 음반 로열티의 흐름을 좇아간 최초의 접근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자 그들은 1990년대 후반 마침 활짝 열린 인터넷에 사이트를 만들고- 대중음악사의 미아(迷兒)에게 어울리게도- 우유팩의 심인(尋人)광고에 로드리게즈의 사진을 넣었다. 그리고 쾅! 여전히 살아 있는 로드리게즈 본인이 홀연 영화 속으로 걸어들어온다.
감격을 위한 한시적 눈가리개
“(로드리게즈가 노래하던) 바(bar)는 디트로이트 강 바로 옆 외진 곳에 있었어요. 술집 문을 여는데 등 뒤로 강을 타고 내려가는 화물선의 소음이 들렸죠. 마치 셜록 홈스 소설 속에 들어간 것 같았어요. 강 수면 위로 물안개가 피어올랐고 술집으로 들어서자 담배 연기의 안개가 맞이했어요. 연기의 벽 너머로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어요. 이상한 목소리의 노래와 독특한 기타연주는 들려오는데 구석에 뒤돌아 앉아 공연하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래서 더욱 가사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프로듀서 데니스 코피와 마이크 시어도어가 추억하는 로드리게즈와의 첫 만남.
이 글은 서두에서 <서칭 포 슈가맨>이 로드리게즈를 직접 추적한 기록이 아니라, 팬들이 수행한 미스터리 해결의 여정을 사후적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라고 전제했다. 말릭 벤젤룰 감독은 영화를 만들어가며 로드리게즈에게 다가간 것이 아니라, 이미 1998년 세상에 알려진 로드리게즈 스토리가 지닌 드라마틱함에 주목해 다큐멘터리를 착안한 것이다. 그럼에도 벤젤룰 감독은 ‘슈가맨 찾기’ 과정보다 로드리게즈의 비범한 음악과 퍼스낼리티에 주목하는 쪽을 택한다. 결과적으로 <서칭 포 슈가맨>에는 극적 구성의 흔적이 드러난다. 영화 초반 벤젤롤은 진실이 어디로 귀결됐는지 알면서도 시치미를 뚝 떼고 아무것도 모르는 양 로드리게즈를 둘러싼 신비로운 소문과 증언을 인터뷰를 빌려 양껏 나열한다. 앞에 인용된 프로듀서들의 추억담이 흘러나오는 장면에 감독은 짐짓 아련하게 재연한 로드리게즈의 이미지를 붙이기도 한다. 두 프로듀서는 물론 영화 초반 디트로이트 주민들의 인터뷰는 하나같이 1970년대의 로드리게즈를, 도시를 방랑하는 자유로운 영혼, 선지자, 유령의 이미지로 묘사한다. 그들의 증언 속에서 로드리게즈는 주소를 가진 정주민이 아니다. 심지어 한 인터뷰이는 디트로이트를 가리켜 ‘그의 서식지’라는 표현마저 쓴다. 로드리게즈는 언제나 어느 길모퉁이를 약속장소로 정해 바람을 타고 온듯 나타나곤 했다는 프로듀서들의 회고는 타임머신을 타고 온 중세 음유시인에 관한 로맨틱한 묘사를 방불케 한다(로드리게즈가 내놓은 두장의 앨범 ≪차가운 사실≫(Cold Fact)과 ≪현실로부터≫(Coming from Reality)의 제목이 좀 무색한 순간이다). 두 앨범의 흥행참패는 로드리게즈에게 강렬한 광채의 아우라를 두를 따름이다. 나아가 의도적 생략도 눈에 밟힌다. 말하는 사람들의 상반신 숏 위주로 편집된 영화 전반(前半)은 보통 인터뷰 위주 다큐멘터리 양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데다가 감상적 회고가 대종을 이루고 있어 다소 지루하다. 그런 가운데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인터뷰는 로드리게즈의 앨범 판권을 소유한 서섹스 레코드의 전 대표 클라렌스 아반트의 것이다. 애초 “내 좋은 친구 녀석 로드리게즈를 누구보다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라는 투의 목가적 표정을 짓던 전직 사업가는, 로열티 수금 여부를 묻자 표변해 상대방의 국가를 모욕하는 발언(“남아공에 몇명이나 살아? 4만?”)도 서슴지 않으며 위압적으로 대화를 끝맺는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남아공 음반사들이 사기를 친 걸까? 벤젤룰 감독은 그러나 석연치 않아서 흥미로운 인터뷰의 진위를 후속 취재하지 않았다. 혹은 취재하고도 편집본에 포함하지 않았다. 왜 밥 딜런은 되고 그는 안됐는지, 충분히 사랑받을 만했던 로드리게즈의 음악이 시장에서 실패한 이유를 동시대 스타들과 견주어 분석하는 전문가의 의견도 나오지 않는다. 여기에서 대상을 순수한 미스터리로 보존하기 원하는 마음을 읽는다면 억측일까.
생사가 묘연한 로드리게즈의 행적을 더듬어가는 시거맨과 음악평론가의 추리 과정은 상당히 느슨하다. 로드리게즈의 가사 가운데 ‘디어본’이라는 지명을 결정적 단서로 발견해 “유레카!”를 외치는 장면에서는 왜 진작 주목하지 않았을까 의아하다. 이 밖에도 영화는 남아공 신드롬을 제외한 로드리게즈의 곁가지 커리어를 다루지 않는다. 1970년대 말 호주에서 가졌던 투어나 짐바브웨, 뉴질랜드 등지에서 받았던 일시적 관심도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죽기는커녕 디트로이트에서 본래 생업이던 건설과 철거 노동을 하며 고스란히 나이든 로드리게즈가 출현하는 순간에는 혹시 여기까지 본 영화가 ‘서칭’이 아니라 발견의 경이와 이어지는 영광의 시간을 강렬하게 만들기 위해 놓여진 서스펜스의 계단이 아니었을까 하는 ‘눈 뜨고 코 베인’ 기분이 슬쩍 스치기도 한다. 요컨대 <서칭 포 슈가맨>의 첫 40여분은 외견상 로드리게즈라는 인지도 낮은 위대한 뮤지션을 소개하는 장이지만, 궁극적으로 거기서 관객이 목도하는 것은 대중문화의 영웅, 그리고 저항적 아티스트에게 우리가 어떤 욕망과 기원을 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케이스 스터디다.
조금도 떵떵거리지 않는 (우리 모두의) 승리
<서칭 포 슈가맨>의 반환점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영화를 다른 차원으로 도약시키는 기적의 지렛대는 시토 로드리게즈의 퍼스낼리티다. <서칭 포 슈가맨>의 50분 이후는, 그 지점까지 영화가 사람들의 추측과 상상으로 지어올렸던 상투적인 록 영웅 전설을 철거하는 동시에 우리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방식으로 다른 부류의 전설을 쓰기 시작한다. 정처 없는 오르페우스인 줄만 알았던 남자는 방랑은커녕 나고 자란 지역에서 이사조차 가지 않고 토박이로 살아왔고, 대학에 늦깎이 진학해 철학을 공부했으며, 냉장고를 등짐으로 져 나르고 건설 오폐물을 처리하며 딸들을 키웠다. 심지어 이웃의 생활을 본인이 노래한 방향으로 개선하겠다는 그로서는 지극히 자연스런 결심의 발로로 지방선거에도 수차례 출마했다(선관위는 투표용지에 그의 이름 철자를 틀리게 인쇄했다). 이보다 산문적일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를 충격하는 대목은 로드리게즈만큼 탁월한 재능을 가진 뮤지션이 더이상 조명을 받지 못하고 소박하다 못해 빈곤한 평생을 살았다는 ‘세상에 이런 일이’풍의 사연이 아니라, 시토 로드리게즈라는 사나이가 세상이 자기를 뭐라고 부르건, 음반을 낼 수 있건 없건 예술가의 포즈를 잃지 않고 살아왔다는 엄중한 사실(cold fact)이다. 뮤지션과 함께 일했던 동료 노동자는 로드리게즈가 험한 일을 하는 현장에 턱시도를 차려입고 와 놀림받았던 날을 기억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날부터 출판이 되건 말건 그 사람은 소설가로서 존재한다는 말을 상기했다. 카뮈가 말한 대로 예술가는 헛된 자부심에 그러나 올바른 희망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 <서칭 포 슈가맨>은 때로는 지인의 인터뷰로 때로는 기록화면으로 로드리게즈가 한때 쓰고 노래했던 가치와 아름다움을 노동과 일상을 통해 변함없이 추구하며 살아왔음을 알려준다. <서칭 포 슈가맨>이 다큐멘터리이면서도 뮤직비디오적인 호소력을 강하게 발휘하는 까닭도 여기 있다. 카메라에 담긴 90년대 말 현재 로드리게즈의 일상은 25년 전 그가 썼던 노래 가사와 완벽하게 어우러지며 관객을 무장해제시킨다. 이를테면 눈발을 헤치고 디트로이트의 황량한 블록을 건너 일하러 가는 로드리게즈의 모습이 <스트리트 보이>의 가사 “너는 너무 오랫동안 밖에 나와 있었어. 눈에 가로등 불빛을 담은 너”와 포개질 때, <나는 사라지리라>(I Will Slip Away)의 “당신은 성공의 심벌을 지킬 테고 나는 내 행복을 찾겠지. 당신은 당신의 시계와 일상을 유지하고 나는 모든 부서진 꿈을 수리하며 살겠지”라는 노랫말과 만나는 순간 이 영화의 혼은 승천한다.
지각 도착한 명성에 대응하는 로드리게즈의 태도는 42년 전 음반회사에서 해고통보를 받았을 때 그가 어떻게 대응했을지 능히 상상하게 한다. 인터뷰어가 더이상 음악인으로 생활할 수 없어 블루칼라로 돌아왔을 무렵의 심경을 묻자 로드리게즈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흠칫했다가 대답한다. “좋았어요. 계속 피를 돌게 해주고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자신이 남반구 어느 나라에서 수십년간 밀리언셀러 음반을 가진 슈퍼 스타였다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던 그는, 그리 애석해하지 않으며 오직 고마워하고 기뻐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부단한 노동으로 다져져 느즈러질 틈이 없었던 늙은 남자의 몸은 수십년 만에 오른 무대 위에서 로커로서 손색이 없으며, 때 타지 않은 감정과 음색은 4반세기 동안 복제 테이프와 음반으로 그의 음악을 애청해온 남아공 관객의 귀에 위화감이 없다. <서칭 포 슈가맨>은 셀레브리티 문화가 후천적으로 더해주는 스타의 형질을 제거한 로커의 희귀한 초상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록에 관한 로맨틱한 숭배를 넘어선 지점에 존재하는 삶 전반을 감싸안는 유미주의적 태도와 영웅 전설을 폐기한 자리에서 완성된 더 거대한 인간의 초상. 마치 누에처럼 예술과 아름다움의 반대말처럼 보이는 것들을 삼킨 다음, 예술을 토해낸 로드리게즈의 인생은 그 자체가, 이른바 작품이 예술품이라 예술제도 안에서 유통되는 게 아니라 예술시장 내부에서 제작되고 거래되기에 예술이라는 ‘제도 미학’을 반격하는 외로운 명제다. <서칭 포 슈가맨>의 정반합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고양감은 그처럼 인생에서 한발 늦게 찾아온 세속적 인정과 영광이 부르는 인간승리의 감격이나 회한의 멜랑콜리와는,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다. <서칭 포 슈가맨>은 촌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니다. 예술가에 관한 영화가 둘 중 하나가 아니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한 인간에게 매료당해 불완전할 수밖에 없었던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소절에 이르러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우쭐대지 않는 해피엔딩, 조금도 떵떵거리지 않는 승리의 이야기다. 단, 그것은 주인공만의 승리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승리로 느껴진다는 점이 특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