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디스토피아로부터
[김선우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콘서트에서 만나요
김선우 일러스트레이션 이선용(일러스트레이션) 2012-11-12

칼럼을 쓰려고 컴퓨터를 켠 순간이다. 인터넷 뉴스난에 볼드체로 떠 있는 ‘겁나게 부조리하고 생뚱맞아서’ 갸우뚱하게 되는 문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 박근혜씨가 “여성 대통령 탄생, 가장 큰 정치쇄신”이라고 했단다. 이런, 오늘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게 아닌데, 한마디 안 할 수 없겠다.

나는 여태 한번도 박근혜 후보가 ‘여성 대통령’에 연결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자타공인 ‘여성’과 ‘여성성’을 심히 애정하는 종족인 내가 여성이 분명한 ‘그녀’를 ‘여성성’을 담지한 존재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그녀는 분명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그녀의 가계로부터 전형적인 남성성을 훨씬 많이 느낀다. 심지어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소비되는 여성 이미지조차 ‘전통적이고 수동적인 현모양처 여성상’이라는 몹시 불편한 방식으로 뒤틀린 남성적 시각의 발현에 가깝다.

유신독재라는 가장 나쁜 형태의 남성적 폭력에 대해 진심의 반성 없는 불통을 그대로 표출하는 그녀가 단지 치마를 입을 수 있는 존재라는 이유만으로 여성 대통령 운운하는 것은 오랜 시간 폭력적 남성성과 사투를 벌이며 간신히 자신들의 대지를 보듬고 지켜온 이 땅의 대다수 여성들을 모욕하는 행위에 가깝다고 나는 느낀다. 21세기 미래대안으로 우리가 공유하고자 하는 여성성의 특질에 대해 그녀는 도대체 어느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를 ‘여성 대통령’ 후보라고 말하는 그녀가 이 땅의 여성들이 감당해온 고통에 연대하려는 노력을 한번이라도 진심을 다해 해본 적이 있던가. 심지어 그녀는 우리 모두의 공분을 일으키는 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에 대해서조차 적극적인 관심과 의사표현을 보인 적이 없다고 나는 기억한다.

‘여성 대통령’을 생물학적 여성에 직결시키는 오류를 범하지 말자. 사람마다 시각차가 있겠지만, 박근혜씨는 내가 보기엔 현재까지 출사표를 던진 대통령 후보들을 통틀어 가장 ‘남성적 전형’에 가까운 후보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대한민국 남자’라는 안쓰러운 수식을 달고 다니며 느닷없는 군복 패션을 보이기도 하는 문재인 후보조차 박근혜 후보에 비하면 ‘덜 남성적’으로 느껴진다.

너무 놀라는 바람에 아까운 지면 다 썼다. 오늘 쓰고 싶었던 이야기는 사실 다음 문장부터다. 웬만하면 어디 모이는 거 귀찮아하는 게으른 작가들이 ‘참다 참다 더는 못 참겠다’는 심정으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대통령 선거도 중요하지만, 작가들이 더욱 민감하게 느끼는 것은 위험수위가 극에 달하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삶이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꼭 해결해야 할 현안들을 작가적 방식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11월13일 첫 번째 ‘작가행동 콘서트’는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모시고 열린다. 20일 두 번째 콘서트는 공권력에 의해 끔찍하게 유린되고 있는 인권 사각지대인 강정마을로 직접 간다. 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어 기쁘긴 하지만, 작가들이 대규모로 움직이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정말로 슬픈 사회를 살고 있다는 방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