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들을 기억하는가? 영화감독이 되려는 아줌마의 고군분투를 사랑스럽게 담아낸 자전적 작품 <레인보우>(2010), 세 남녀의 달콤쌉싸름한 동상이몽을 다룬 <키친>(2009), 감성적인 공간 운용으로 극한의 공포를 담아낸 <4인용 식탁>(2003), 연쇄살인사건을 회화적 상상력으로 풀어냈던 <거울 속으로>(2003). <가족시네마>는 이 개성 넘치는 장편 데뷔작을 만든 감독들의 최근작을 한데 모은 옴니버스영화다. SF영화부터 블랙코미디까지, 서로 다른 분위기의 네 중편영화를 묶는 키워드는 ‘가족’이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내이고, 엄마이자 아빠인 주인공들은 저마다 위기에 봉착하고, 일순간 벼랑 끝으로 몰린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카날플러스상을 수상한 신수원 감독의 <순환선>은 매일같이 지하철 2호선을 타며 시간을 보내는 한 실직 가장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의 아내는 둘째를 임신 중이고, 태어날 아기에 대한 부담감은 그의 앞에 돌연한 환상으로 찾아온다. 홍지영 감독의 <별 모양의 얼룩>은 유치원 캠프 화재사고로 딸을 잃은 엄마와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1년 만에 사고 당시의 목격자가 나타나자 애써 견뎌나가던 일상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이수연 감독의 <E. D. 571>의 배경은 2030년이다. 성공한 커리어우먼인 주인공에게 과거 난자 기증으로 태어난 아이가 찾아와 당돌한 제안을 한다. 김성호 감독의 <인 굿 컴퍼니>에 나오는 출판사 직원들은 출산이 임박한 동료의 거취를 둘러싸고 갈등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시감이 든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영화 속 캐릭터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분유 값을 벌기 위해 구걸을 하고, 부모의 불화에 좌절해 눈물 흘리며, 공과 사를 구분하라는 질책을 듣고, 손에 잡히지 않는 일을 전투하듯이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이같은 친근함은 <가족시네마>의 양날의 검이다. 화면 속의 현실에 쉽게 공감되는 반면, 그만큼 이야기가 익숙한 방향으로 흐르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네편 모두 일상 속에 긴장감을 켜켜이 쌓아가는 연출 호흡이 좋고, 전반적으로 배우들의 연기가 섬세하며 안정적이다. 특히 <인 굿 컴퍼니>는 그동안 화제를 모았던 독립영화계의 스타 배우들이 총출동해 매우 인상적인 연기 앙상블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직원들의 이율배반적 면모와 현실의 부조리를 다큐멘터리와 시트콤적인 요소를 활용해 유쾌하게 묘파해내고 있는데, 파업을 함께 시작한 동료들이 하나둘씩 업무에 복귀하는 과정의 디테일도 좋고 캐릭터들의 개성과 현실감도 두드러진다. 이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파이팅’이다. 영화에서는 다소 아이러니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가족시네마>에서 만났던 캐릭터들과 이들을 똑 닮은 실제 현실의 그와 그녀들에게 이 말을 전하고 용기를 북돋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