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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을 넘어서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12-11-06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크리스 헴스워스 주연의 <로보포칼립스>

<로보포칼립스> 대니얼 H. 윌슨 지음 / 문학수첩 펴냄

<워호스> 촬영현장의 스티븐 스필버그(오른쪽).

<로보포칼립스> Robopocalypse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크리스 헴스워스 / 개봉 2014년 4월25일

수많은 SF소설과 그들을 자양분 삼은 SF영화들 덕분에 테크놀로지의 공습은 누구나 상상할 수 있는 미래가 돼버렸다. 대니얼 H. 윌슨의 소설 <로보포칼립스> 또한 ‘로봇 vs 인간’의 연대기에 추가된 작품에 지나지 않는다. <로보포칼립스> 역시 똑같이 묻는다. 인간의 곁에서 인간을 돕던 로봇이 어느 날, 인간보다 더 똑똑해진다면? 그런데 이처럼 해묵은 주제의 소설을 영화화하려는 이가 스티븐 스필버그다. 그 또한 “<로보포칼립스>의 주제가 더이상 새롭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그는 “많은 SF소설과 영화가 그려온 미래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니 이 주제는 해가 바뀔 때마다 더 우리의 현실과 밀접한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로보포칼립스>는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시작한다. 스카이넷을 연상시키는 인공지능 서버인 아코스는 알래스카의 영구동토층 아래에 숨어 있다. 군대를 이끌었던 코맥 월러스는 아코스를 소탕한 뒤, 정육면체의 물건을 발견한다. 이 물건에는 수많은 인간들의 모습이 영상으로 담겨 있다. 그들을 분류한 카테고리는 ‘영웅’이다. 아코스 자신이 전세계의 뉴스와 CCTV를 비롯해 전화와 온라인으로 오갔던 대화들을 통해 로봇에 맞서 싸운 인간들을 기록한 것이다. 소설은 코맥 월러스가 그들 개개인의 사연을 번역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코스가 탄생한 이후, 전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주변의 로봇들과 이상한 갈등을 겪는다. 패스트푸드점 아르바이트 직원은 평범한 가정용 로봇에게 공격을 당하고, 일본의 전자제품 수리공 할아버지 또한 사랑하던 로봇의 변심과 죽음을 목격한다. 이 밖에도 장난감 로봇에게서 위협을 당한 아이,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로봇이 사람들을 공격하는 광경을 지켜본 군인, 해킹을 방해한 이를 찾다가 아코스와 통화를 하게 된 뚱뚱한 해커 소년 등의 사연이 이어진다. 드디어 전세계 로봇들이 전쟁을 일으켰던 ‘제로아워’가 발발하고, 도시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아코스가 영웅으로 명명한 이들은 곧 아코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방법과 힘을 찾게 된다.

<로보포칼립스>를 쓴 대니얼 H. 윌슨은 로봇공학을 전공한 공학박사다. <로봇들의 반란에서 살아남는 법> <로봇 군대를 만드는 법> 등의 논픽션을 쓴 그는 <로보포칼립스>에서도 다양한 종류의 로봇들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역할과 능력을 세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텍스트로 묘사되는 로봇들의 모습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로봇들을 연상시키는 건 흥미롭다. <A.I.> 속 휴머노이드와 <우주전쟁>의 트라이포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생체인식로봇 등등. 심지어 사람들을 치어 죽이는 자동차들에서 <대결>의 트럭을 떠올릴 수도 있다. (오히려 스필버그가 제작한 <트랜스포머>의 로봇들을 닮은 캐릭터는 없다.) 어쩌면 1978년생인 대니얼 H. 윌슨은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며 로봇공학자의 꿈을 키웠을지도. 하지만 무엇보다 <로보포칼립스>가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부분은 아코스에 대항하는 인간들의 우정과 연대다. 소설은 평범하거나 이기적이었고 괴팍했던 인간들이 로봇과의 전쟁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을 밀도 높게 묘사한다. 스티븐 스필버그로서는 살아 있는 동안 더이상의 로봇영화를 만들 필요가 없을 만한 프로젝트가 될 듯 보인다.

아코스에 대항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로봇들에게 눈을 잃은 소녀 마틸다페레스다. 원래의 눈을 잃은 대신 로봇의 눈을 갖게 된 그녀는 로봇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을 수 있고, 로봇과 교감할 수도 있다. 소설에서 이 캐릭터가 등장하는 모습은 <쉰들러 리스트>의 빨간 원피스 소녀에 버금가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스필버그라면 분명 이 소녀를 살뜰히 챙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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