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는 1993년부터 96년까지 <팔루카빌>이라는 만화 시리즈를 작업했다. 이번에 번역출간된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는 그 <팔루카빌> 시리즈의 에피소드 일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코믹스 저널>에서는 ‘20세기 코믹스 베스트 100’을 꼽으면서 이 작품을 52위에 올렸다. 주인공과 작가의 이름이 같은 것은 그들이 사실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북미에서 자전적 코믹스들이 등장한 1990년대의 인기 작가 중 하나인 세스는 만화에서 주변인들을 등장시켜 사실성을 더했는데 <너 좋아한 적 없어>의 체스터 브라운도 세스와 절친한 동료 만화가다. 주인공 세스는 만화를 좋아한다. 그것도 옛날 <뉴요커>에 실렸던, 지금은 구하기 힘들고 작가 이름도 이제는 잊혀진 그런 만화들을 좋아한다. 그러다 한 작가, 캘로에게 매혹된다. 잘 알려지지도 않았고 이제는 작품을 구해보기도 힘든 그 작가가 사망한 도시가 세스 자신이 유년기를 보낸 소도시임을 알게 되고, 그 도시로 되돌아가 작가의 흔적을 밟아보기로 한다. 그 여정은 세스 자신을 돌아보는 길 위에서의 체험이 된다. 세스는 쇠락해가는 옛 공업도시가 되어버린 어릴 적 살던 동네를 거닐며 쇠락해가는 광경에서 아름답고 절박한 어떤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 자신을 옛날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것들을 떠올린다. “말하는 것의 반대는 듣는 게 아니다, 기다리는 것이다”라는 프랜 레보비츠의 말이 책 중간에 인용되는데, 자전적인 만화를 그리는 작가에게는 만화로 말하기 위한 과정이 그 기다림 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현실로 돌아올 무언가를 길어내는 과정으로서의 기다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멈추어 뒤돌아보기. 참고로, 책 말미에 캘로의 만화가 수록되어 있는데 세스의 팬들 사이에서 과연 캘로가 실재하는 작가인지의 여부는 아직도 논란 중인 듯하(고 세스가 만들어낸 캐릭터라는 게 정설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