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한 창작 뮤지컬의 극작과 연출을 맡게 되었다. 무대에 대한 관심은 예전부터 있었다. 고등학생 때도 음악극을 해본 적이 있고 대학 시절에도 전공은 내팽개치고 4년 내내 연극반에서 굴러다녔다. 무엇보다 영화 데뷔작이었던 포복절도 호러판타지 ‘뮤지컬’ <삼거리극장>으로 이 영화를 본 소수의 관객의 뇌리에 적지 않은 흠집을 낸 바 있다. 이듬해 ‘뮤지컬 어워즈’ 심사위원으로 50편에 가까운 뮤지컬을 보러다니던 해도 있었다. 따라서 이번 뮤지컬 연출 의뢰는 늘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내게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_-;;;
아이러니한 것은 <삼거리극장>을 무대 버전으로 각색한 대본을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애쓰던 때는 그렇게 오지않던 기회가 무대에 대한 혼자만의 일방적인 관심을 접고 영화에만 순정을 바쳐야지 하고 마음먹으니 덜컥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 들어와버린 것이다.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기다리는 영화사 대표에게는 죄송했지만 무대를 꼭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그리고 이 기회를 통해 언젠가는 <삼거리극장>을 무대에 꼭 올리겠다는 생각으로 제안을 수락했다.
뮤지컬 대본을 쓰고 배우와 스탭을 뽑고 연습에 들어갔다. 대본을 본 뮤지컬 관계자들의 의견은 한결같이 너무 영화적이라는 평이었다. 그동안 내가 쓴 영화 시나리오에 대해 주변 영화인들에게 꽤 연극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 나로서는 이런 반응이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영화인들이 말하는 연극적이라는 느낌과 공연쪽 사람들이 말하는 영화적이라는 느낌은 사실 상대적인 것일 뿐 결국 우리쪽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뭐 어느 쪽이 됐건 연습에 들어갔고 나와 배우들은 요즘 매일같이 대본 읽기를 하고 있다. 배역들을 돌아가면서 맡아보고 대본에 써 있지 않은 것도 배우들이 즉흥적인 대사와 연기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중에서 호응이 좋았던 것은 다음날 대본에 바로바로 반영된다. 모든 것이 현장에서 결정되고 반응은 즉각적이다. 정신없이 배우, 스탭들과 부대끼며 하루를 보내고 나면 기분 좋은 피로가 몰려온다. 뮤지컬 연출을 하기로 하면서 무대에 대한 욕심 이외에 내가 기대했던 소소한 즐거움은 이런 것이었다. 서로 부대끼고 뒹굴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함께 짜고 수시로 의견을 교환하고 함께 떡볶이를 먹고 저녁이면 술로 고주망태가 되는 삶. 모든 게 엄정히 구분되어 분야별 전문가들이 제 할 일을 묵묵히 하는 영화 현장, 그래서 믿음직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 상당히 외로웠던 영화 작업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공연을 올리기까지 앞으로 두달 남짓한 기간 동안 이 즐거움이 악몽으로 바뀔지 두고 볼 일이지만 당분간은 이런 식의 작업이 다소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내 영화에 대한 생각에도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 기대해본다. 대부분 영화 팬이겠지만 <씨네21> 독자 여러분도 가끔씩은 주변의 공연장을 찾아주십사 하는 부탁의 말씀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