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이 흘렀다. 해직이 되고 나서 무려 4년의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그렇게 오래일 줄 몰랐을 것이고 알았다면 조금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선택했고 지난 4년간 버텨왔다.
해직 4주년 행사를 하는 백범김구기념관에 조금 늦게 도착해서 해직기자이자 과동기인 정유신 기자를 찾았다. 언제나 그렇듯 밝은 표정으로 맞아주고 자리까지 잡아줬다. 옆에는 역시 또 다른 과동기인 친구가 먼저 와 있었다. 잠시 행사를 지켜보다가 담배를 한대 피우러 행사장 밖으로 빠져나왔다. 희망 펀드라는 이름으로 주위에서 도와주긴 했지만 생활이 어려웠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 신청까지 했다고 하는 말을 듣고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심하게도 차분한 밤하늘이었다.
또 다른 친구는 아기 기저귀를 캐리어에 묶어서 끌고 왔다. 툴툴거리며 끌고 가는 기저귀를 보며 밑바닥이 꺼지는 웃음이 툭 튀어나왔다. 늦은 저녁자리가 마련된 오리고깃집에서 YTN을 사랑하는 이들의 웃음소리를 등으로 들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쳤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그 시절에야 많은 이들이 윤택남(YTN의 애칭)을 외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새로 들어온 후배들은 아마 이들의 얼굴이 낯설 수도 있을 것이고, 새파랗던 신입은 어느덧 어엿한 출입기자가 되어 이들이 가지 못하는 곳을 매일 드나들고 있을 것이다.
돌발영상을 제작했던 임장혁 기자가 외부 사람들을 한명씩 돌아가며 소개했다. 내 차례도 곧 돌아오겠다 싶어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딱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대충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하나의 문장으로 잘 정리되지가 않았다. 일어나 이런저런 말을 내뱉긴 했지만 역시 횡설수설이었다.
트위터로 알게 된 몇분의 YTN 직원과 인사를 나누고, 어느 자리에나 빠지지 않고 와 있는 미디어 몽구와 또 인사를 나누고, 돌발영상과 함께 <지식채널e>가 최고의 프로그램이라던 임장혁 기자와 눈인사를 하고, 붉은 얼굴에 맨발로 뛰쳐나와 배웅하던 노종면 위원장을 뒤로한 채 자리를 나섰다.
오면서 내내 행사 마지막에 고 김근태님을 대신해서 참석한 인재근 의원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인 의원은 김근태 의원이 딱 세 마디를 남겼다고 했다.
“내가 여러분을 지킨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나를 지킨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그날 YTN 해직기자 행사의 제목도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