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하는 여자들의 그림책>의 원제는 ‘우리의 집들’(Nos Maisons)이다. 중세부터 20세기까지 그려진 그림(과 약간의 사진)들 속 생활공간 묘사를 분석한다. 254x235mm라는 넉넉하고 묵직한 책의 크기 덕에 그림 속 장면을 크게 만날 수 있음은 장점. 하지만 집에 대해 전문적이고 심도 깊은 분석을 담고 있지는 않다. 무심코 지나쳤던 명화 속 구석의 가구 하나하나가 말을 걸어온다.
유럽의 침대에 두터운 커튼을 친 이유를 아는 사람? 이 책에 따르면 “침대 주위로는 잠자는 사람들을 밤의 추위로부터 보호해주는 두꺼운 커튼이 드리워 있다. 차가운 바닥의 냉기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침대는 나무로 만든 단 위에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침실은 바로 거실이었다. 집주인의 침대는 거실에 놓이곤 했다. 개인 공간은 없었고, 침실이 놓인 주변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지금의 거실과 같았다. 살롱(거실)이 발달하면서 침실은 비로소 사적인 공간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침실에서 시작해 부엌으로, 창으로, 다른 여러 방들로, 식당과 욕실로 이 책은 관심사를 넓혀간다. 유럽의 건물을 직접 보게 되면 동양의 집과 달라 특히 생생하게 다가오는 벽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프레스코화와 태피스트리는 가장 중요한 장식 수단인 동시에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수단이었다. 또한 그림 속에서 종종 주인공 이상의 존재를 보여주거나 암시하는 거울의 역할도 화제에 오른다. 저택 내의 전실은 가장 안쪽의 방까지 들어오는 손님을 걸러내는 방식이자 전실 앞에 늘어선 하인들을 통해 자신의 지위를 과시하는 노하우이기도 했다. 그리고 혁명 직전의 프랑스에 아파트(한국의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유럽식)가 유행했다. 이제 아파트에는 진짜 입구를 가린 가짜 입구와 있는 줄 몰랐던 작은 방,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바닥은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시대가 변해가고 살림집의 ‘그림’이 달라지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책을 보고 나면 유럽에서 18세기와 19세기에 쓰인 많은 소설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