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부산이다. 10월4일 개막한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때문이다. 올해도 <씨네21>은 부산영화제 현장에서 데일리를 내고 있다. 이번 사무실은 영화의 전당 바로 옆에 있어서 개막식장에서 쏘아올린 화려한 불꽃을 코앞에서 볼 수 있었다. 나란히 앉은 문재인, 박근혜 후보는 그 불꽃을 보며 대망을 되새겼겠지만, 나는 ‘오늘도 무사히’를 되뇌었다. 영화제라는 곳이 워낙 상황이 급변하는 분위기다 보니 자칫하면 사고를 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오늘도 무사히, 올해도 무사히.
개막 전날인 3일 영화의 전당에 자리한 부산영화제 사무국을 들렀을 때 깜짝 놀랐더랬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을 비롯한 프로그래머들이 평온한 분위기 속에서 개막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수영만의 컨테이너 건물을 우당탕 누비던 게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용관 위원장은 “그만큼 시스템이 갖춰졌고 실무자들이 일을 알아서 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아닌 게 아니라 부산영화제도 이제 17살이 된 만큼 철이 든 모양이다.
매주 쳇바퀴 돌리듯 허덕허덕 일하는 주간지 기자 입장에선 1년 단위로 일하는 영화제 일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렇게 일하게 된다면 매년 야심을 불어넣어 그야말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이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작 1년 단위로 일을 진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듣다 보면 사람 일이라는 게 똑같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부산영화제 같은 경우는 매년 새로운 야심을 엿볼 수 있게 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 부산영화제 최고의 야심작은 세계적인 중국 배우 탕웨이를 개막식 사회자로 내세운 것일 터. 탕웨이가 안성기 선배의 한국어를 너무 잘 알아듣는 게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그냥 폼으로나마 귀에 리시버라도 꽂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할리우드 리포터>의 분석처럼 “진정 글로벌 행사로 발돋움하려는” 부산영화제의 야심만큼은 잘 엿볼 수 있었다. 영화에 있어서 변방인 방글라데시의 <텔레비전>이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이나 영화제 기간을 하루 늘려 관객으로 하여금 두번의 주말을 맞을 수 있도록 한 점도 열일곱 내기의 관록과 패기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여러모로 어수선했던 영화의 전당도 정돈됐고 센텀시티의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물가가 비싸다는 점만 빼고) 보다 편리해졌다. 프리뷰룸에서 여러 작품을 미리 접한 취재기자들에 따르면 상영작들도 예년만큼 고르고 좋단다. 미적대다 아직 출발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두 번째 주말까지 영화제가 열리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가볍게 짐을 싸서 부산으로 오시라. 영화티켓을 구하기 어렵다고? 어차피 영화제에서 영화는 옵션이 아니던가. 가을 햇살에 부서지는 해운대 앞바다의 광채만 즐겨도 본전은 뽑는 거다. 다만, 밤공기가 차가우니 두툼한 웃옷은 꼭 챙기시길. 자 그럼, 우리 부산에서 만나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