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독재자였고, 침묵한 나도 공범이다”라며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통렬히 참회했던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가 85살로 지난해 세상을 떴을 때, 나는 한동안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생각했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스탈린’이었던 어떤 생,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삶일지라도 그것을 갈무리하기 위해 필요했을 고통과 용기와 책임. 독재자의 자식이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는 지난한 독립의 과정에서 그녀는 이겼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평안한 휴식을 빌었다.
이 땅에도 독재자의 자식이 있다. ‘태어나보니 아버지가 박정희’였다. 그게 어찌 그녀의 잘못이겠는가. 문제는 독재자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혹은, 독립할 의사가 없는) 그 딸이 권력을 쥔 거물 정치인이 되어 자신의 입으로 “5•16은 아버지가 불가피하게 선택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라고 너무도 당당하게 말하는 괴이한 형국의 아연함. 이것 참,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법과 국민을 도대체 그녀는 뭘로 보는 것인지!
얼마 전 그녀가 등장하는 사진 한장을 한참 들여다본 적이 있다. 내 시선을 붙든 그 사진은 예컨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일상에서 발견해 창조한 ‘결정적 순간’들과 질적으로 다르면서도 대한민국 정치현실의 일상이 예리하게 포착된 ‘결정적 순간’이라는 측면에서는 묘하게 상통하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의 그녀는 전태일 동상에 헌화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녀가 꽃다발을 바치려는 노동자 전태일 동상 앞에는 살아 있는 노동자들이 있었다. 회사를 위해 수십년 일하다가 하루아침에 쫓겨난 해고자이자, 전임 지부장이 감옥에 간 뒤 새로이 지부장을 맡아 3년 동안 22번의 장례를 치러야 한 상주인 쌍용차 노조 김정우 지부장. 그런데 그는 멱살이 잡힌 채였다. 전태일 동상 앞에서 꽃을 든 그녀가 웃고 서 있고, 그녀의 측근은 살아 있는 노동자의 멱살을 틀어쥐고 있었다.
‘노동자’라는 말에 존엄이 스미게 하고 ‘연대’라는 말의 심장을 뛰게 만든 아름다운 노동자 전태일의 동상에 그녀가 바치려는 꽃. 아, 꽃이 저토록 부조리해질 수도 있구나! 한숨이 나왔다. 그녀는 못 들었다 해도 꽃은 전태일의 목소리를 들었을 것만 같다. “내게 꽃을 바치기 전에 여기 이 형제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주시오. 죽음과도 같은 현실을 살아서 견디고 있는 이 노동자들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해보려 노력하시오. 그조차 못하면서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 되려고 합니까?”
대한문엔 여전히 갈 곳 잃은 22명의 위패가 쓸쓸하다.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는 지금도 노숙 농성이 계속되고 있다. 마주치는 노동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으면서 그녀는 사진기자들을 대동하고 여기저기를 ‘포토 존’으로 만들며 화해니 통합이니 말한다. 아, 정말이지 못 봐주겠다. 멱살이 잡힌 쌍용차 지부장의 손에 들려 있던 손 팻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쌍용차 문제해결 위한 국정조사 외면하면서 전태일 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