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 지식이 필요한 영화가 있고 없어도 무방한 영화가 있다. 스페인에 소재한 세계 일류 레스토랑 엘 불리와 수석주방장 페란 아드리아를 다룬 요리 다큐멘터리 <엘 불리: 요리는 진행 중>은 전자다. 분자요리에 대해 모르면, 그들이 요리를 하는 건지 과학실험을 하는 건지 분간이 안될 수도 있다. 엄밀한 물리화학적 측량술을 기반으로 한 이 요리법은 가히 해체주의적이다. 재료의 형태는 온데간데없고, 재료에서 추출한 무언가가 모여 새로운 형태의 요리로 탄생한다. 2009년, 요리의 ‘개념’에 접근하고자 페란이 선택했던 그 무언가는 ‘물’이다. 그와 그의 멘티들은 6개월 동안 레스토랑 문까지 닫고 바르셀로나의 빌라에 틀어박혀 생선, 버섯, 고구마 등에서 추출한 액상 샘플 중 최적의 재료들만 가려냈고, 그를 바탕으로 새 시즌 코스를 ‘창조’해냈다.
제목에서 방점은 현재진행형에 찍힌다. ‘완성’이라는 도달 불가능점을 향해 그들은 부단히 전진할 따름이다. 재개점 뒤에도 서른개가 넘는 요리로 채워진 코스는 날마다 진화를 거듭한다. 손님들의 피드백에 따라 가짓수나 첨가물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아방가르드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가는 건 창조적인 감정을 얻기 위한 거죠.” 페란이 말하는 그 예술적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실제로 요리가 완성돼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후반부는, 지난한 기초 작업을 다룬 전반부보다 확실히 흥미롭다. 하지만 전 과정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기에 따로 떼어 평가할 수 없다. 감독도 전 과정을 바흐의 평균율과 같은 리듬으로 균등하게 다뤘다. 내레이션이나 자막의 부재가 불친절하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그러한 접근법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요리계의 스티브 잡스’의 명성을 확인하기에 부족하지 않은 다큐멘터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