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좌/우, 진보/보수 중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자문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같은 질문을 던져봤고 많은 것들을 고려한 결과 ‘중도 보수 우파’쯤 된다는 답을 얻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사람들은 나를 ‘진보 좌파’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마도 내가 주로 비판하고 각을 세우는 이들이 흔히 ‘보수 우파’라고 지칭되는 이들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내가 ‘보수 우파’ 반대편에 있으니 자동적으로 ‘진보 좌파’로 여겨지는 단순한 계산법이다.
저쪽을 반대하니 이쪽이라는 이분법적 논리의 문제점은 일단 접어두자.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논리를 그대로 따른다고 해도 남게 되는 한 가지 의문점이다. 내가 ‘진보 좌파’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검증되어야 할 의문점, 즉 많은 이들이 ‘보수 우파’라고 생각하는 세력이 정말 ‘보수 우파’인지 말이다.
만약 저들이 정말로 ‘보수 우파’임이 분명하다면 내가 ‘진보 좌파’이거나 최소한 ‘보수 우파’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준하 선생 의문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보수 우파’라고 불리는 이들의 ‘뿌리’인 이승만, 박정희 정권은 대표적인 민족주의 보수 우파 독립운동가였던 장준하 선생을 탄압했던 세력이다. 만약 나에게 적용했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보수 우파인 장준하 선생을 탄압한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야말로 ‘진보 좌파’ 정권이 되고 만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란 건 이 글을 읽는 모든 이들이 알 것이다.
근현대사에 관한 책을 대강이라도 훑어보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엔 크게 세 가지 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가 민족주의 보수 우파다. 그다음이 사회주의 좌파고 마지막으로 친일세력이 있다(좀더 자세히는 중도 좌우파와 극좌우파로 다시 나눠야 하지만 어쨌든 크게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앞 두 세력의 경우 어쨌거나 항일운동을 했던 이들이기 때문에 서로 힘을 합쳐 친일세력을 몰아낸 뒤 양쪽이 체제 경쟁을 하는 게 맞지만 안타깝게도 당시는 냉전체제가 출발하던 때였다. 강대국에 의해 타의로, 또 내부적인 혼란과 분열로 인해 남한의 경우 친일세력이 좌파 타도를 외치며 살아남아 생명을 연장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보수 우파를 좌파로 매도하여 타도하고 권력을 쥐게 된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했다고 해도 친일세력임을 자임할 순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꼼수가 스스로를 ‘보수 우파’라 지칭하는 거였다. 하나 아무리 뻔뻔해도 세상이 다 아는 친일 경력을 숨길 순 없었다. 그래서 만들어낸 게 이른바 ‘반공보수’다. 쉽게 말해 공산당을 타도하지만 나라는 팔아먹을 수도 있는(?) 보수 우파인 셈으로 상당히 변태적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오랜 독재정권 기간 동안 이 변태적 반공보수가 ‘보수’의 대표주자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지고 현재까지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 그럼 이제 다시 자문을 해보자. 과연 당신은 좌/우 진보/보수 중 어디에 속하는가? 물론 이때 ‘보수’라는 것을 변태적 반공보수를 쓸지, 장준하 선생 같은 민족주의 보수 우파를 쓸진 당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를 대입해보니 분명 나는 ‘보수 우파’였음을 재차 밝힌다. 저는… 진보 좌파가 아니무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