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기에는 새로운 생활철학이 필요하다. 낭비를 줄이자는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큰 일부터 사소한 일까지 예산을 줄여서 전보다 훨씬 못한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는 구매활동이 자신이 처한 어려움에 대한 한탄과 비관, 스트레스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면 가장 기본적으로 구매하고자 하는 마음부터 다시 정돈해야 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살았다는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는 동양의 단순한 삶에 매혹된 서구인의 글인데, 그 시기가 일본 버블경제의 흥망성쇠를 정통으로 통과한, 그러니까 동양식 무절제가 낳은 비극을 목도한 시기임을 생각하면 다소 헛웃음을 웃게 되는 면은 있으나 ‘단순하게 살기’가 의미하는 만족의 중추를 다른 맛으로 길들이기 프로젝트가 발목부터 차오르는 불경기를 보다 참을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도미니크 로로는 물건, 몸, 마음의 관점에서 단순함을 논하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필요 이상으로 탐하지 말라’ 정도가 되겠다. 특히 눈길을 끈 쪽은 물건과 몸에 대한 이야기들. 싸다는 이유로 쌓아놓게 되는 고만고만한 옷, 읽지 않을 것을 뻔히 예측하면서 버리거나 남에게 주지 못하는 책, 정리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도무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너저분한 방의 풍경을 바꾸라는 충고가 이어진다. 몸을 위해서는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을 소박하게 먹기. 어떻게 보면 예측 가능한 제안들이지만, 소비사회에 길들어 산 사람이 이 책의 제안을 따르려면 약물중독자가 치료받듯 괴로운 가시밭길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것. ‘사지 마라’가 아니라 순간의 구매욕을 만족시키고 짐이 될 물건을 늘리지 말라는 뜻이다.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라는 말인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우습게도 명품 백을 사는 사람의 자기 합리화도 대개 여기서 기인하지 않았던가. 엄마가 들던 백을 딸이 들 수 있다고들 했다. 하지만 유행은 계절처럼 매정하게 지나가버리고, 나만 해도 한때 죽을 때까지의 사랑을 맹세했으나 이제는 들 수 없는 고가의 핸드백을 몇개나 갖고 있다. ‘무엇을’ 사는 데 돈을 써야 오랫동안 쓰면서 행복할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다. ‘관계맺기’ 장은 남에게 과도한 솔직함을 요구하지 말고, 주는 행위가 상대만큼이나 자기 자신이 기쁨을 얻기 위한 것임을 깨달으라는 말로 시작한다.
돈을 쓰고, 감정을 폭발시키고, 배가 부르게 먹는 일이 주는 도취감이 영원히 지속 가능한 성질의 것이었다면 새삼 절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다. 넘치는 삶이 더이상 계속될 수 없다면 그럼에도 불행해지지 않고자 한다면, 생각의 방향을 트는 편이 적응하기 쉽다. 어쩔 수 없을 때가 아니라 선택할 수 있을 때 결정하기. 인내 대신 욕망의 크기와 성격을 바꿔나가기. 이게 말처럼 쉬웠으면 이런 책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