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대처하는 이탈리아인들의 자세는? 바다로 가거나 산으로 가는 것. 도시의 많은 영화관들이 문을 닫았다. 더위를 식히러 간 이탈리아인들이 도시에 없기 때문이다. 휴양지에 자리한 도시들은 저녁시간이면 광장에 야외 영화관을 열고, 지난 1년 동안 개봉됐던 영화들로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모은다. 주변의 잔잔한 조명과 어우러진 여름밤의 야외 영화관은 이탈리아 휴양지의 별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인들이 도시로 돌아오는 시기에 맞춰 8월29일부터 9월8일까지 베니스 리도섬에서 열리는 제69회 베니스영화제는 끝난 휴가의 아쉬움에 시작의 의미를 던지는, 끝과 시작의 ‘다리’ 같은 의미를 갖는다. 베니스영화제에 진출한 영화들이 9월 초 이탈리아 극장에서 줄줄이 개봉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이탈리아영화 3편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잠자는 미녀>와 프란체스카 코멘치니 감독의 <특별한 날>, 그리고 다니엘레 치프리 감독의 <그것은 아들이었다>이다.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의 <잠자는 미녀>는 상영 이전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연극 무대에서의 오랜 경험을 자랑하는 토니 세르빌로와 프랑스의 개성파 여배우인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이 영화는 오늘날 이탈리아 모습을 반영하듯 “질문은 있되 답은 없는 영화”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 영화를 후원하기로 한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 지방은 영화 제작 중반 즈음 “정치영화는 후원할 수 없다”며 지원을 중단하기로 결정해 논란을 불러왔다. <잠자는 미녀>는 1992년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소녀 엘루아나 엔글라로의 삶을 영화화했다. 그녀의 부모는 17년간 딸을 간호한 뒤 영양제 공급을 중지할 것을 법원에 요구하며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프란체스카 코멘치니 감독의 <특별한 날>은 저예산으로 제작한 코미디영화다. 클라우디오 비갈리의 소설 <손가락으로 하늘을>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젊은이의 만남과 사랑, 일을 다룬다. 영화를 만든 코멘치니 감독은 외곽 도시에서 만난 두 젊은이가 시내로 이동하는 하루를 그리며 그들의 일상과 관심을 가볍게 다루고자 했다. 시칠리아 출생의 다니엘레 치프리 감독의 <그것은 아들이었다>는 시칠리아 팔레르모의 가난한 한 가족이 마피아의 총싸움에 우연히 연루되는 과정을 다룬다. 목숨을 잃은 딸의 사례금으로 메르세데스 자동차를 산 가족은 부의 상징인 메르세데스와 함께 서서히 파멸해간다. 경쟁작에 진출한 세편의 영화 이외에도 이바노 디 마테오 감독의 <리 에퀼리브리스티>가 오리종티 부문에, 세편의 이탈리아 다큐멘터리가 비경쟁부문에 초청됐다.
베니스영화제는 올해 새로운 집행위원장을 선출하며 조직과 프로그램을 새롭게 단장하는 분위기다.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간 베니스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던 알베르토 바르베라가 10여년 만에 같은 자리로 귀환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인간, 사회, 문화의 속성과 오늘의 인간, 사회, 문화의 위기를 반추하는 영화제가 될 것”이라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화려함을 내세우기보다는 진실성, 고백, 현실의 반영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일간지들은 올해 베니스영화제의 경향에 대해 “여성성이 눈에 띄는 영화제”, “여성의 에로스가 강한 영화제”라고 평한다. 이러한 경향을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의 에로스 스릴러 <패션>이다. 이 영화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섹스장면을 가감없이 보여줘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테렌스 맬릭 감독의 <투 더 원더> 또한 많은 장면에서 누드와 섹스 신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여성의 동성애, 강한 성적 욕망을 묘사한 영화들이 영화제 전반에 골고루 배치되어 있다는 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