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초상>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는 ‘지식인들’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2부는 ‘기업가들’이라는 명제로 묶여 있다. 모든 이야기는 사실상 톈안먼 사태에서 시작하며, 그 이후 중국의 정신적 변화상이 1부, 물질적 변화상이 2부가 되는 셈이다. 각 부는 3장으로 이루어졌는데, 하나의 장은 한 사람의 이야기다. 베이징에서 나고 자라 톈안먼 사태 때 미국으로 건너가 지금은 영어로 중국에 관한 글을 출판하는 자젠잉은 이 책을 사적이고도 공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이 책의 첫장은 바로 그녀의 배다른 오빠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일단 이것만은 말해두자. 2부에서는 대부분 입이 떡 벌어지는 성공담이 줄을 잇는다. 1980년 홍콩의 공장 조립라인에서 일하던 열네살 소녀가 2010년대에 들어 <포브스>가 발표하는 자수성가한 세계 10대 여성 부호에 이름을 올리는 중국식 성공신화다. 아마도 다시는 전세계 어디서도 반복될 수 없을, 미친 성장의 증거들이다. 하지만 1부 1장은 그렇지 않다. 이 책에서 현재의 성공이 바탕이 되지 않고 거론되는 유일한 사례. 자젠잉의 오빠인 자젠궈는 1999년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9년형을 살았다. 야당인 중국민주당의 창당을 거들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문화혁명 때 ‘역겨운 지식인’이자 ‘반혁명분자’라고 낙인찍힌 부모 아래서도 학교 홍위병 무리의 우두머리가 된 젠궈는 가난한 시골을 변화시겠다는 각오로 하방한다. 마오쩌둥이 죽은 뒤 문화혁명이 막을 내리자 그는 혁명도 무엇도 아닌 것의 변두리를 전전한다. 그가 베이징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톈안먼 사태가 터졌다. 하지만 그는 주인공이 될 수 없었다. 도시 엘리트들 사이에서 그는 시골뜨기 취급을 당했다.
“언론인과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반짝 기분이 좋았다가 우울과 두려움에 빠져드는 심적 변화를 겪는 이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공적 생활을 접고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했다(몇몇은 나(자젠잉)처럼 미국이나 유럽으로 떠났다). 학자들은 난해한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가진 거라고는 세상을 내 이름으로 바꾸겠다는 열망뿐인 자젠궈에게는 그런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체포되어 형을 살게 된 그에게 주변 사람들이 일단 출옥한 뒤 그다음을 도모하는 게 좋겠다고 설득을 해도 먹히지 않았다. “당원 몇 백명이 서로 칭찬의 글이나 써주는 무력한 집단”으로 치부되는 중국민주당의 마지막 불꽃이 되고자 했으니까.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가 다 다르다. 국가의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는 피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하지 않겠니. 남한이나 타이완을 보렴. 참 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받았고, 참 많은 사람들이 감옥엘 갔다. 하지만 국민들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일어서고 또 일어서서, 민주화로 가는 길을 닦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 그렇다. 김애란의 <비행운>식으로 말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라면, “너는 발전해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