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근형의 인터뷰 자리에 따라 나간 건 일상이 무료해서도, 강병진 기자를 감시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나이 많은 배우에 대한 형식적인 예우 차원도 아니었다. <추적자 THE CHASER>를 통해 연기의 지존임을 새삼 입증한 대배우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었고, 인터뷰에 응해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간 자리였는데도 약간은 긴장이 됐다. 영화나 드라마 속 인상처럼 날카로운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짐작과 아버지뻘 되는 연배가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의 첫인상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평소 함께하는 스탭과 배우들에게 밥을 사주곤 한다는 소문이 괜히 나도는 게 아닌 듯했다. 게다가 그는 연신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그렇게 보셨다니 감사합니다” 식의, 지극히 정중한 말투로 응대해서 강병진 기자를 몸둘 바 모르게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혹시 <추적자…>에서 기억나는 대사가 있습니까?”라는 강병진 기자의 질문에 그가 답할 때였다. “불행하게도 지금 제가 기억하는 대사는 거의 없어요. 오십 몇년을 연기했지만, 내가 한 역할의 대사는 잘 기억을 못합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려요. 멎어 있지 못하죠. 자꾸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려 하니까. 도전하는 사람은 지나간 이야기를 잘 모를 수밖에 없어요.” 이제 연기라면 누워서 떡 먹은 뒤 땅 짚고 헤엄치다가 식은 죽 먹는 것보다 쉬울 법한 경력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도전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뻔한 단어일 수도 있는 ‘도전’이란 말을 대배우의 입을 통해 듣자니 묘한 감동이 찾아왔다.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항상 괴로워요”라는 임권택 감독의 이야기를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달까. 최근 매니지먼트 업체와 계약하기 전까지 그는 직접 차를 몰아 하루에도 촬영장을 몇 군데씩 찾았다니, 역시 중요한 건 자세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가 긴 시간 동안 대배우로 인정받게 된 데는 연기의 테크닉뿐 아니라 정중함, 도전정신, 격의없는 태도 등이 합쳐져 만들어낸 어떤 화학작용이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박근형 선생님, 부디 오래오래 활동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PS. 1-8년 반 동안 한솥밥을 먹던 김도훈 기자가 <씨네21>을 떠나게 됐다. 영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명민한 감각, 뛰어난 글솜씨까지 갖췄던 그였기에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개념의 매체에 도전하겠다는 그의 뜻을 꺾을 수는 없었다. 그와 그의 능력이 한껏 발휘될 새 매체의 앞날이 창창하기를 바란다.
PS. 2-칼럼 ‘디스토피아로부터’를 통해 동물에 대한 사랑과 육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펼쳤던 이효리씨가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하게 됐다. 새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한다. 우리로선 안타까운 일이긴 하지만 ‘가수 이효리’의 컴백도 좋은 일 아닌가. 효리씨, 그동안 고마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