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판 <건축학개론>’이라는 홍보문구처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첫사랑의 아련한 기억을 90년대의 기억 속에 녹여내고 있다. 1994년 대만의 남자 ‘고딩’들은 방에 왕조현 브로마이드를 붙이고 있었고 대만 프로야구는 물론 미국 NBA 농구에 열광하여 ‘코트의 신사’ 그랜트 힐에 빠져 지냈다. ‘4대천왕’ 유덕화, 장학우, 여명, 곽부성의 인기에 결코 뒤지지 않았던 대만의 ‘4소천왕’ 오기륭, 임지령, 금성무, 소유붕의 브로마이드도 빼놓을 수 없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늘 뭔가를 먹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처럼 그땐 이상하게도 돌아서면 배가 고팠고, 별거 아닌 얘기도 일단 모였다 하면 밤새 끝날 줄을 몰랐다. 딱히 우리나라와도 다르지 않았던 기억이다. 그렇게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진 것처럼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흘러간 그 모든 시간에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각각 나름대로 의의가 있다”는 오프닝 자막처럼.
이제 막 17살이 된 커징텅(가진동)은 시도 때도 없이 서 있는 ‘발기’ 쉬보춘(언승우), 모범생 ‘뚱보’ 아허(학소문),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 ‘머저리’ 라오차오(장호전), 어이없는 마술로 여자를 꼬이려드는 ‘사타구니’ 랴오잉홍(채창헌)과 늘 몰려다닌다.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반 친구들이 된 이들은 모두 반장이자 우등생인 션자이(첸옌시)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교실에서 사고를 친 커징텅이 션자이의 특별 감시를 받게 되고 둘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진다. 이후 교과서를 빼먹고 등교한 션자이를 커징텅이 도와주는 등 둘은 점차 가까워지고, 커징텅은 션자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안 하던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생전 안 하던 짓을 하게 되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던 누군가의 유치한 행동에 문득 마음이 동할 때, 그렇게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소리없이 찾아온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는 상대방의 사소한 행동 하나에 마음이 콩닥거리던 풋풋한 어린 시절의 첫사랑 이야기다. 수업시간에 자위행위를 하는 장면, 식구들 모두 벌거벗고 돌아다니며 생활하는 장면들을 헛웃음 나도록 유쾌하게 처리한 것에서 보듯 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은 대책없는 명랑함이다.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고, 하면서 아무런 가식도 없이 경쾌하게 지난날을 돌아본다. 실제 자신의 이름 그대로 출연한 가진동은 더이상 유치할 수 없는 그 나이대의 남자를 너무나 귀엽게 소화해낸다. 이별을 통해 성숙해진다는 청춘성장영화의 관습과도 거리가 멀다. 꼭 성장하고 변화해야 어른인가. 커징텅과 그의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도 그냥 늘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고, 그게 이 영화의 가장 기분 좋은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