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영화의 메카는 상암동인 것 같다. 며칠 전 송해성 감독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상암동 첨단산업센터의 ‘프로덕션 존’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진행 중인 영화 12편의 사무실이 밀집한 이곳에는 오디션 장소를 알리는 A4 용지가 붙어 있고 스탭으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분주히 오가고 있었던 것. 올해 상반기의 실적에서 드러나는 한국영화의 생동하는 기운을 맛봤달까, 뭐 그런 느낌이었다. 송 감독이 준비 중인 <고령화 가족>의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생각보다는 면적이 넓었고 예상보다 쾌적했다. 예전 한국영화 활황기의 제작 사무실에 비하면 인테리어나 공간 넓이가 부족해 보였지만, 송 감독의 말은 “그럭저럭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프로덕션 존은 서울영상위원회에서 ‘디렉터스 존’, ‘프로듀서스 존’과 함께 운영하는 ‘영화창작공간 사업’의 일부다. 지금 이곳의 방 12개는 모두 들어찼다. <고령화 가족>을 비롯해 김현석 감독의 <AM 11:00>, 이환경 감독의 <12월 23일>(가제),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 김용균 감독의 <이야기> 등이 촬영을 진행하고 있거나 준비 중이다. 많은 영화가 이 공간을 찾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서울영상위원회에 따르면 큰 사무실의 경우 한달에 70만~80만원, 작은 사무실은 그 절반의 비용만 내면 최대 8개월까지 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 게다가 책상이나 복사기 같은 기본적인 집기까지 제공해준다. 그래서인지 지난해 4월부터 운영을 시작한 프로덕션 존은 제작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는 중이라고 서울영상위는 전한다.
이곳과 경기도 고양시 일산과 화정의 영화공간들, 머지않아 가시화될 파주의 영화산업단지까지 고려하면 한국영화의 무게중심은 확실히 서울·경기도의 서북부로 쏠린 게 틀림없다. 불과 5~6년 전만 해도 강남 요지에 화려한 인테리어로 장식된 사무실에서 영화를 만들던 제작사들이 서북부로 움직이게 된 건 2006년을 기점으로 한국영화가 대침체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무실 월세도 내기 힘들어진 영화사 입장에서 지방 정부가 제공하는 창작 공간은 고비용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였을 것이다(그러고보면 한국 공무원들의 마인드도 많이 발전했다). 하긴, 아무리 영화사 사무실이 으리으리해도 그것이 영화 화면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기에 이같은 판단은 현명했다. 어쩌면 이런 ‘거품 빼기’ 작업이 2012년 상반기 한국영화의 대약진을 낳은 원동력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한국영화가 다시 활황세로 돌아서면서 많은 예측이 나오고 있다. 영화가 돈이 되는 것을 본 새로운 투자자본이 충무로로 들어올 것이라는 근거없는 전망도 있다. 만약 새로운 자본이 유입돼 영화계에 돈이 넘치면 영화사들은 다시 거품을 물고 강남으로 향하게 될까. 아무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서북부에서 빡빡하지만 합리적인, 소박하지만 알찬 시스템을 맛본 이라면 쉽사리 강남행을 선택하진 않을 것이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