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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쳐야 뜬다?!
이화정 2012-08-23

<도둑들> <알투비: 리턴투베이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점쟁이들>… 영화계 왜 멀티 캐스팅 바람 부나

무더위의 기승과 함께 극장가의 전쟁도 치열한 때다. 요즘 극장에 걸린 포스터들을 보면 이건 머릿수의 싸움이지 싶다. 톱배우 10명의 도둑들로 구성된 <도둑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자랑한다. 정지훈 혼자 안되는 게임도 있었던가? <알투비: 리턴투베이스>는 군대 간 그를 포함해 무려 여섯명의 공군팀을 내세운다. 차태현의 관객 동원력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선시대에 얼음을 훔치는 자들 역시 팀원으로 구성된다. 원톱의 파워가 빠져나간 자리, 그 자리를 다수로 패키징된 배우들이 채우고 있다. 멀티 캐스팅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짚어본다. 아이돌을 능가할 떼거리의 전쟁이 시작됐다.

<도둑들>

1. 10명의 주연이 열배의 흥행을 보장한다?

“한 사람당 50만명만 책임지면 500만 관객이 되는 거다.” <도둑들>의 개봉 전 인터뷰 때 김혜수가 한 말이다. 10명의 주연이 있으니 수치적으로 볼 때 간단한 셈이 나온다. 지나가는 말이었지만 혼자 200만, 300만명을 끌어안고 가는 것만큼 부담스럽지는 않다는 말로 들렸다. 김혜수의 말처럼 10명의 ‘도둑’이 각자 기본 50만 이상의 관객은 동원한 게 틀림없다. 개봉 3주차 만에 <도둑들>은 약 760만 관객을 동원했다. 평일 평균 3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을 감안하면 <해운대> 이후 요원해 보이던 1천만 관객도 멀지 않았다. 흥행요인이야 많다. 최동훈 감독에 대한 신뢰도, 장르에 대한 선호도, 뿐만 아니라 1994년 이후 닥친 18년 만의 폭염으로 극장을 찾는 관객이 증가했다는 이유도 찾을 수 있다. <도둑들>을 거론할 때 가장 큰 비판의 대상이자 우려 지점이었던 ‘드라마가 없이 각자 따로 논다’는 평은 흥행 전선에 결정적 장애가 되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도둑들>은 하나의 이야기를 따라가되 각 시퀀스의 주인공이 바뀌는 형태를 띠고 있다. 관객은 스토리의 특정 장면을 기억하기보다, 되레 특정 장면을 통해 전체 스토리에 도달하는 체험을 한다. 스토리가 중심이 되는 영화 체험과는 사뭇 다르다. <도둑들>을 본 한 영화 관계자는 말한다. “관객이 극장 문을 나오면서 하는 이야기만 들어봐라. 전지현의 코믹한 액션 연기에 혹하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임달화가 보여주는 중년 로맨스에 필이 꽂힌다. <나는 가수다>에서 색깔이 다른 톱가수들의 각축전을 본 관객이 공연장을 빠져나오면서 선호하는 가수가 각자 다른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당장 최근의 토크쇼만 봐도 진행자 한명으론 안된다. 멀티 패키징은 단순히 영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양함이 있어야 살 수 있다.”

<점쟁이들>

2. 떼거리가 몰려온다

두 번째 영화를 준비 중인 충무로의 한 감독은 <도둑들>은 좀체 현실화되기 힘든 캐스팅 구성이라고 말한다. 최동훈 감독과 전작을 같이한 김윤석, 김혜수가 있었고, 흥행감독이라는 믿음이 배우들의 참여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감독들에게 여전히 캐스팅의 벽은 높기만 하고, 이런 캐스팅이 가능한 감독은 손에 꼽을 정도라는 거다. <도둑들>의 투자 배급사인 쇼박스 한국영화팀의 김도수 팀장 역시 <도둑들>의 패키지는 만들려 한다고 뚝딱 만들어지는 기획이 아님을 강조한다. “<도둑들>의 앙상블 캐스팅은 독특한 경우로 분류되어야 한다. 이런 작품은 상황이 뒷받침되어야 할 수 있단 말이다. 다양한 캐릭터를 비슷한 비중으로 다 살리는 플롯이 있었고, 감독에 대한 배우들의 신뢰도 한몫해서 가능했던 결과다.”

따지고 보면 모든 인물이 주연이 되는 <도둑들>의 캐스팅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정도와 맥을 같이한다. 그러나 실상 주·조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멀티 캐스팅으로 놓고 본다면 올해 영화의 키워드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얼음 창고를 둘러싼 액션활극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차태현, 오지호, 민효린, 성동일, 고창석 등이 출연하며, 세종이 되기까지 충녕군의 고뇌를 코믹하게 풀어낸 사극 <나는 왕이로소이다>에는 주지훈, 백윤식, 변희봉, 박영규, 임원희, 이하늬 등 다양한 배우가 포진해 있다. 공군 특수비행팀의 활약을 그린 <알투비: 리턴투베이스>에서는 정지훈, 유준상, 신세경, 김성수, 이하나 등이 어느 누가 주연이라 할 것 없이 각각 비중을 나눠 갖는다. 개봉을 앞둔 영화들에서도 멀티 캐스팅의 트렌드는 읽힌다. 추석 개봉을 앞둔 신정원 감독의 <점쟁이들>은 토착 점쟁이들을 소재로 한 한국판 <히어로즈>로 김수로, 강예원, 이제훈, 곽도원 등이 각각의 다른 능력을 가진 캐릭터로 출연한다. 개봉할 영화와 제작 중인 작품들에서도 멀티 캐스팅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한국판 <무간도>를 표방한 <신세계> 역시 최민식, 이정재, 황정민 같은 톱배우들로 구성되었다. 류승완 감독의 첩보영화 <베를린>은 한석규, 하정우, 류승범, 전지현이 주·조연으로 각각 기능하며, 여자 대학원생 살인사건을 둘러싼 <분노의 윤리학>은 이제훈, 조진웅, 김태훈, 문소리, 곽도원 등이 이야기의 중심인물로 출연한다.

<신세계>

3. 누구도 흥행 보증수표가 될 수 없다?

<나는 왕이로소이다>를 홍보하는 딜라이트의 장보경 대표는 멀티 캐스팅 붐에 대해 “완벽한 스타가 사라지면서 따라오는 필수불가결의 선택”이라고 말한다. “<도둑들>은 A급 배우로 이루어진 최상의 조합이지만, 각각의 배우가 따로 떨어졌을 때 그만큼의 몫을 할 수 있는지는 고민해봐야 한다. 과거처럼 원톱 배우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는 없다. 주연이든 조연이든 명확한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가 사라진 거다. 관객은 ‘그 배우’라서가 아니라, ‘그 배우도 나와서’ 영화를 선택한다.” 지난해 <푸른 소금>과 올 초 <하울링>의 흥행 부진은 송강호라는 흥행 보증수표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전망을 낳았다.

이렇게 ‘절대배우’는 사라졌지만 반대로 그 자리를 대신할 신뢰를 주는 배우들은 많아졌다. 과거 충무로 영화를 ‘명계남이 나오는 영화와 그렇지 않은 영화’로 나눈다거나, 도드라지는 조연으로 이문식이 손꼽힌 것처럼 명확한 조연배우가 존재하던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조성하, 성동일, 조진웅, 김정태, 박철민, 고창석과 같은 이른바 주연을 위협하는 조연들이 최근 들어 대거 출연했다. 쇼박스 홍보팀의 최근하 과장은 “명품 조연의 시대도 지났다. 이젠 주연급 조연이란 표현이 더 맞다. 멀티 캐스팅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들이 바로 주연급 조연이다”라고 분석한다. 이들 주연급 조연은 관객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각 영화에 긍정적인 기능을 담당한다. 한 투자관계자는 “감초 역할을 하는 배우들이 영화의 흥행에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애초 시나리오를 그렇게 기획할 순 없지만, 시나리오를 보고 코믹한 역할을, 배우를 좀더 강화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선 전체적인 드라마보다 캐릭터가 재밌고 독특한가가 때로 더 큰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물론 우려의 시선도 없지 않다. 최근하 과장은 “기획단계부터 메인 캐릭터 외의 배우를 모두 내세우다 보니, 전체적으로 개런티의 부담이 커지는 데다, 역할 모두가 필요 이상으로 중요해지면서 더러 균형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알투비: 리턴투베이스>

4. 새로운 기획과 다양한 캐릭터를 원하는 시대

45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올여름 흥행작으로 등극한 <연가시>의 성공요인을 보자. 주연배우 김명민이 전면에 나섰지만 막상 해답은 신선한 장르와 소재에 있었다. 전통적인 멜로, 드라마에서 탈피한 기획이 관객에게 호응을 얻었다는 결론이다. CJ엔터테인먼트 투자팀의 장진승 과장은 “전통적인 멜로나 드라마에서 벗어난 신선한 기획, 장르가 먼저고, 그걸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가 구현된다. 멀티 캐스팅은 이같은 필요에 의해서 생겨났다고 본다”고 전한다. <점쟁이들>의 기획에 참여한 매니지먼트 사람의 이소영 대표 역시 멀티 캐스팅은 새로운 기획이 만들어낸 결과치임을 강조한다. “<점쟁이들>의 경우, 처음부터 캐릭터 무비를 표방하고 나섰다. 기획을 하고 보니 각각의 캐릭터 비중이 컸고, 그 역할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이 뒤따른 거다. 애초 멀티 캐스팅을 전제로 했다면, 캐스팅 자체가 쉽지 않았을 거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역시 얼음을 훔치는 사람들의 면면을 강조하다 보니 외관상으로는 멀티 캐스팅으로 자리한 또 하나의 예다. <분노의 윤리학>을 제작하는 TPS 컴퍼니의 김현철 대표는 멀티 캐스팅이 한국영화의 장르가 진화하면서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변했다. 더이상 드라마만으로 통용되지는 않는 시대다. 당장 올해의 흥행작들만 살펴봐라. 관객은 굳이 ‘볼거리는 많은데 드라마는 약하다’는 평가를 하지 않는다. 볼거리는 볼거리 자체로 미덕을 가지는 것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5. 예산이 없으면 멀티 캐스팅도 없다?

<도둑들>의 배우가 모이기까지 지극히 아날로그적인 판단과 과정이 전제된 건 맞다. 그렇지 않고서 순수하게 돈과 이익에 의해서만 이 구성이 가능하지는 않았다는 건 앞서 이야기한 바 있다. 그렇지만 배우 개런티에도 그 방법이 완벽하게 통용되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A급 스타들의 평소 개런티를 감안할 때, 순제작비 110억원 중 적어도 20억원 이상은 배우 개런티로 할애됐을 거란 이야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정 금액에 불과하다. 한 영화의 주연배우 사이에서도 어떤 배우는 러닝 개런티를 받고, 상대배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비중있는 배우들이 많아질수록 제작사의 부담이 커지는 건 당연하다. 물론 스타 캐스팅이 투자를 받는 데 유리하다는 걸 감안하면 결국 캐스팅이 작품의 사이즈를 결정하는 순환고리를 형성한 건 맞다.

이 과정에서 멀티 캐스팅이 곧 사이즈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건 아니다. 배우들이 작품을 결정하기까지는 감독, 시나리오, 제작사 등의 변수가 있으며, 최근엔 캐릭터의 변별력도 배우들의 관심을 유도하는 요소로 자리하고 있는 추세다. <도가니> <완득이> <부러진 화살> <내 아내의 모든 것>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흥행작들을 볼 때 관객 역시 사이즈에 반응한다기보다 새로운 기획과 캐릭터에 대한 요구를 더 많이 한다. 캐릭터의 다양성, 멀티 캐스팅이 필요해진 시대라면, 그 역시 합리화된 방식을 강구해볼 때다. 이제훈, 조진웅, 김태훈, 문소리, 곽도원이 출연해 멀티 캐스팅의 예로 자리한 <분노의 윤리학>을 예로 들어보자. 이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을 롤모델로 삼은 작품인데, 예산이 크지 않은 만큼 캐스팅에 대한 고민이 클 수밖에 없었다. <분노의 윤리학>이 택한 방식은 배우 지분제다.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한 <부러진 화살>과 비슷한 방식으로 배우들의 자발적 참여가 전제됐다. 대신 예산은 스탭과 프로덕션이 제대로 운용될 수 있는 데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배우들의 지분 참여를 거창하게 말하자면 매니지먼트의 파워가 커졌다고 읽힐 수도 있지만, 저예산영화인 이 경우에 적용시키는 건 무리다. 일단은 캐스팅의 합리화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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