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경기 중계를 지켜보면서 떠오른 영화가 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경기장면을 담은 레니 리펜슈탈의 기록영화 <올림피아>(1938). 급진적 카메라 앵글, 극단적 클로즈업, 급격한 스매시 컷 등, 오늘날 스포츠 중계와 상업영화에 사용되는 상당수의 기법이 이 영화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감독의 나치 전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그 탁월한 기술적-예술적 성취에 힘입어 아직까지도 여러 리스트에 세계 100대 영화로 올라 있다.
기록을 넘어서
<올림피아>에 사용된 다양한 기법은 일반적으로 기록영화에서 요구되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 영화의 예술성은 바로 이 시각적 ‘과잉’에서 나온다. 가령 높이뛰기 경기는 앙각으로 촬영된다. 선수가 마치 하늘을 배경으로 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넓이뛰기의 경우, 앙각을 확보하기 위해 경기장 옆에 참호를 팠다. 심지어 경기장의 부감숏을 얻기 위해서 카메라를 애드벌룬에 실어 날린 뒤, 주민신고를 받아 필름을 회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이빙 시퀀스는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영화는 다이버의 동작을 부감과 앙각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렇게 수시로 시점을 교차시키면 관객의 공간감각에는 커다란 혼란이 일어난다. 이때 리펜슈탈은 슬쩍 필름을 되돌려 수영장으로 떨어지던 다이버를 다시 도약대로 날아오르게 만든다. 그 뒤로는 입수장면이 빠진 도약장면들이 계속 이어진다. 이제 다이버들의 신체는 물리법칙의 제약을 넘어 영원히 허공을 비행하게 된다.
마라톤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리펜슈탈은 달리는 선수를 ‘오버 더 숄더’로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는다. 간단한 기법이나 미학적 효과는 대단하다. 이제 화면에는 신체와 대지만이, 말하자면 인간과 대지의 고독한 투쟁만이 남는다. ‘보라. 수천년 전 마라톤 평원을 달리던 그 용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거기에 가끔 클로즈업으로 선수들(손기정, 남승룡)의 얼굴을 비춤으로써 리펜슈탈은 이 영웅들이 겪는 초인적 고통의 표현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현실이 된 신화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은 리펜슈탈의 이 탁월한 예술적 감각이 파시스트 육체미학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올림피아> 전체를 관통하는 미학은 이 영화의 프롤로그에 잘 나타나 있다. 영화는 먼저 그리스 폴리스의 폐허를 비춘다. 이어서 화면에는 조각상이 등장한다. 그리스의 조각상은 물론 ‘그리스’라는 역사적 민족이 지녔던 이상적인 육체미의 자취다. 이 시퀀스는 마지막으로 뮈론의 <디스코볼로스>(원반 던지는 사람)를 보여주며 끝난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디스코볼로스>에 실제로 원반 던지는 사람이 오버랩된다. 이로써 고전주의 비평가 빙켈만이 극찬하던 그리스인의 신체는 이상적인 아리아인종의 신체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그리스의 조각을 토대로 한 고전주의 미학이 졸지에 나치의 육체미학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디스코볼로스라는 조각상을 슬쩍 실제로 존재하는 독일인 신체로 바꿔놓은 ‘오버랩’은 신화를 현실로 둔갑시키는 매우 의미심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다.
나치들이 찬미한 것은 그리스의 ‘예술’이 아니라, 그것의 모델이 되어준 ‘신체’였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조각상을 보고나서 보디빌딩을 시작한 미시마 유키오의 미감은 제대로 파시스트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나치의 육체미학에는 물론 역사적 배경이 있다. 나치는 정신만 발달한 지식인형- 인간, 주둥이만 살아 있는 평론가형- 인간을 경멸했다. 그런 인간은 ‘유대인의 이상’이라는 것이다(괴벨스는 1930년대 후반 평론 자체를 아예 금지하기도 했다).
프롤로그는 <올림피아>의 1, 2부를 관통하는 신체미학의 집약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곧바로 리펜슈탈의 육체미학이 나치의 인종주의 미학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올림피아>에서 리펜슈탈이 영웅화한 것은 백인만이 아니었다. 외려 영화에서 각별히 부각된 것은 손기정-남승룡 선수와 같은 황인종, 그리고 나치가 극도로 혐오했던 미국의 육상선수 제시 오언스였다. 히틀러는 이 ‘니그로’에 대한 시상을 거부한 바 있다.
사실 근대문화에는 어떤 ‘편향’이 있다. ‘지덕체’의 전인을 중시했던 고대인과 달리, 근대인들은 육체를 경시한 게 사실이다. 30년대에 이 근대의 정신주의적 편향에 대한 비판은 지성계에 널리 퍼져 있었다. 나치의 문제는 육체를 복권하려 한 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반대의 극단으로 달려갔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자율적 판단을 중시하는 ‘사유형’ 인간을 혐오하며 아무 생각 없이 상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행동형’ 인간을 내세웠다.
리펜슈탈이 원래 무용수였다는 것도 그녀가 신체의 아름다움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공연 중 부상으로 무용수로 더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자, 그녀는 은막으로 진출해 신체적 한계에 도전하는 매우 활동적인 유형의 역할을 맡았다. 따라서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은 그녀의 개인사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죽기 얼마 전까지 90살의 노구로 스킨 스쿠버 장비를 하고 잠수를 하여 수중촬영을 하기도 했다.
고상한 야만인
종전 뒤 리펜슈탈은 나치에 협력한 혐의로 한동안 연합군에 체포된다. 그녀가 나치 운동을 진지하게 믿었으며, 히틀러를 비롯한 나치 수뇌부와 긴밀한 친교를 맺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로 인해 여러 번 고소를 당했지만 그때마다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곤 했다. 나치의 부역자로 낙인찍힌 상황에서 제대로 활동을 할 수는 없는 일. 그렇게 세인의 기억 속에 잊혔던 그녀가 예술계로 복귀하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누바족(族)의 마지막>(1973)이다.
수단의 오지에 사는 누바족의 일상을 담은 이 사진집은 리펜슈탈의 육체미학의 애매한 위상을 다시 한번 말해준다.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원시적 건강함을 가진 누바족의 신체다. 흑인의 신체를 영웅화함으로써 리펜슈탈은 자신의 육체미학이 나치의 인종주의와는 아무 상관없음을 다시 한번 강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육체의 아름다움에 대한 변함없는 찬미는 그녀가 여전히 파시스트 육체미학에 집착하고 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실제로 수전 손택은 이 사진집이 여전히 “깨끗한 것과 불순한 것, 청련한 것과 오염된 것, 육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즐거운 것과 비판적인 것을 대립시키는” 전형적인 파시스트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리펜슈탈에 따르면, 레슬링을 하는 누바족의 남자들은 물질적 보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종족의 신성한 활력의 갱생을 위해” 싸운다고 한다. 손택은 리펜슈탈의 이런 수사학 속에 여전히 나치 이데올로기에 대한 향수가 살아 있다고 본다.
손택은 미학적 전범재판의 검사가 되어 리펜슈탈의 유죄를 주장한다. “육체적 기술과 용기의 시연, 약자에 대한 강자의 승리를 공동체 문화를 단합시키는 상징으로 여기는 사회를 찬미한다는 점에서, 리펜슈탈은 나치영화를 만들 때에 갖고 있던 생각을 거의 수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리펜슈탈에 대한 재판이 모두 무혐의로 끝났듯이, 이 미학적 재판도 그녀가 유죄라는 증거를 찾지는 못할 것 같다.
리펜슈탈의 미감은 손택이 주장하듯이 그렇게 밀접하게 나치 이데올로기와 연관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확고한 이념 수준의 ‘파시스트 미학’이라기보다는 막연한 감성 차원의 ‘프로토 파시스트 감성’에 가깝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