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시작은 온화하였으나 끝은 심히 막장이리라. 뉴욕에 사는 교양 넘치는 두 부부가 브루클린의 한 아파트에 모였다. 페넬로피 롱스트릿(조디 포스터)과 마이클 롱스트릿(존 C. 라일리)의 집이다. 그들의 아들의 얼굴을 나뭇가지로 후려쳐 이 두개를 부러뜨린 아이의 부모 낸시 코원(케이트 윈슬럿)과 앨런 코원(크리스토프 왈츠)이 사태를 무마하려고 온 참이다. 처음에는 무난한 대화가 오고간다. 하지만 허례허식의 유효기간은 짧다. 누구 하나가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순간 저마다 한 성질 하는 어른들의 빅뱅이 시작된다. 다르푸르의 분쟁을 연구한다는 자칭 박애주의자 페넬로피, 자격지심으로 무장한 만년 철물점 사장 마이클, 중산층의 우월의식이 몸에 밴 투자상담가 낸시, 휴대폰이 천생연분인 제약회사 변호사 앨런은 이내 허물 벗듯 체면을 벗는다. 심지어 나중에는 부부고 뭐고 없다. 각개전투에 돌입한 그들의 연속 충돌에 4면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공간은 포화상태에 이른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추락할 때까지 그곳을 벗어날 방법은 없다. 그들의 뾰족한 신경, 순도 높은 가식, 성마른 기질, 가공할 만한 무책임함이 극을 조였다 풀었다 하는 동안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토사물과 17년산 고급 위스키가 촉매제 역할을 한다.
<대학살의 신>은 로만 폴란스키가 2년 전 가택연금에 처해진 동안 야스미나 레자와 함께 그녀의 동명 연극을 시나리오로 옮긴 것이다. 그는 이 연극의 두 가지 측면에 끌렸던 것 같다. 하나가 부르주아적 가치관에 대한 풍자가 담긴 내용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어떤 생략도 없이 리얼타임으로 진행되는” 형식이었다. 그는 80분간 30평 남짓한 아파트 안을 맴도는 지극히 폐쇄적인 세팅을 흥미로운 제약으로 받아들였다. 보트 안에 갇힌 세 사람의 심리에 밀착한 데뷔작 <물속의 칼>부터 호화 별장을 투명감옥으로 둔갑시킨 전작 <유령작가>에 이르는 그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린다면, 그의 생애 첫 코미디라 해도 그리 의아한 행보는 아니다. 그런 공간성을 경유해 가족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주인공들을 포박하고, 그 가운데 문명인들의 가차없는 야만성이 곳곳에 웃음폭탄처럼 매설돼 있다. 그래서 세트를 최대한 실제 브루클린의 중산층이 살 만한 아파트에 가깝게 짓는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그 안에서 서서히 질식 상태에 이를 수 있도록 매일 리허설을 반복하며 대사와 동선을 매만진 배우들도 출중한 호흡을 선보인다. 그 과정 끝에 폴란스키는 왜곡된 클로즈업과 스테디캠으로 들고 찍는 방식을 선택했는데, 그 효과가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밀실 토크와 어울린다. 폴란스키라는 이름에 부합하는 걸작은 아니나 산전수전 다 겪은 감독의 여유와 관록이 묻어나는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