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면장갑을 끼고 넘겨야 할 것만 같은 책이 여기 있다. 인도 독립출판사 타라 북스가 만든 <나무들의 밤>은 숲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온 인도 중부 곤드족 출신 아티스트 세명의 작품을 엮은 수제 그림책이다.
‘환상적 수목도감’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그림책은 열아홉 그루의 나무가 짐승과 인간, 우주의 생명을 보듬는 이야기다. 지난 16년간 민속 예술과 민담을 작가와 아티스트, 수제본 장인들의 협업을 통해 핸드메이드 북에 담아온 타라 북스는 공정무역 관행을 준수하는 노동자 공동 소유 출판사다.
타라의 다른 책처럼 <나무들의 밤>은 코뮌 생활을 하는 장인 14명의 손끝에서 태어났다. 버려진 천과 마포, 꽃으로 만든 재생지를 천연염색한 다음 일일이 세 아티스트의 작품을 실크스크린으로 찍어내고 수작업 제본한 이 책은 각 권이 세상에서 유일한 판본이어서, 복제품이되 정결한 아우라를 두르고 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사랑을 카피하다>(Certified Copy)에서 한없이 오리지널에 가까운 복제본의 가치를 말했는데, 그 명제에 <나무들의 밤>은 매우 적합한 ‘삽화’다.
<나무들의 밤>의 나무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열대병> 속 밀림과 호흡을 주고받으며, 셸 실버스타인의 동화가 그린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관용을 공유한다. 대지를 뚫고 어떤 건축물보다 당당히 솟아오른 나무를 바라보며 “오직 신만이 저런 존재를 만들 수 있다”고 경탄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그림책에서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의 상징을 볼지도 모른다. 미술평론가 존 버거는 <나무들의 밤>을 가리켜 “나이팅게일이 동틀 때까지 노래하는 책”이라고 요약했다. 만약 당신이 독서등만 밝히고 새벽이 올 때까지 침대에서 아주 천천히 이 책을 넘겨본다면, 갈피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흙 향기 속에서 버거가 쓴 문장의 진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초판 3100부가 발행됐고 각 권에는 일련번호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