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트작을 리메이크한다는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사실 처음에 스크립트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읽는 것을 주저했었다. 왜냐하면 막 <다이하드4.0>을 마친 때여서 프리퀄, 시퀄, 리메이크 등 프랜차이즈에 대한 부담이 어떤 것인지 생생하게 알고 있었고, 그 부담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크립트 첫 페이지를 넘기자 그런 고민은 끝났다.
-오리지널과 차별화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 결정들은 어떻게 내렸나. =그러한 노력에 대해서 내가 모든 공을 받는 것은 불공평하다. UFB와 식민지로 나뉜 미래사회나, 원작에서와 달리 인물들을 화성으로 보내지 않는 설정 등은 내가 처음 각본을 받았을 때 이미 그 안에 있었다. 실제로 필립 K. 딕의 원작 소설에서는 등장인물이 화성으로 가지 않는다.
-콜린 파렐을 캐스팅한 건 의도적으로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대치되도록 하기 위한 것인가. =맞다. 아무도 아놀드를 대신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놀드는 처음부터 슈퍼스파이 그 자체이고, 시간이 지나 스파이로서의 활동을 시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서는 더글라스 퀘이드가 준비된 스파이가 아니라 평범한 남자인 것이 중요했다.
-콜린 파렐이 평범하다니! 그에게서 찾아낸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콜린은 내가 더글라스로 가장 먼저 생각한 배우다. 그는 다른 배우에게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양면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더글라스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하우저의 본모습을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콜린은 <폰부스>에서부터 <킬러들의 도시>에 이르기까지 유약하지만 착한 남자의 자질과 나쁘고 예민한 남자의 자질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 두 가지 자질을 오가며 보여주는 것은 쉽지 않은 능력인데, 콜린은 타고났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카메오로 기대한 팬들이 실망하겠다. =재미있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아놀드의 영화를 보고 자란 나로서는 끌리는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로 인한 유머의 톤이 영화와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당신은 부인인 케이트 베킨세일의 액션 페르소나를 만든 사람이다. 이번에도 그녀는 인상 깊은 액션을 보여준다. =(웃으며) 사람들은 케이트의 강인한 면만을 보지만, 내게는 귀엽고 부드럽고 재미있는 면도 많이 보인다. 액션배우로서 케이트를 캐스팅하기도 했지만, 진지하면서도 유머를 소화할 수 있는 그녀만의 능력 때문에 캐스팅했다.
-집에서는 영화와 많이 다른가. =물론이다. 훨씬 더 착하고, 훨씬 더 멋지다. 사람들이 내게 아내와 계속해서 작업하는 이유를 묻는데, 감독으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뢰하고 선택할 수 있는 여배우는 많지 않다. 케이트는 내가 믿는 여배우다.
-케이트 베킨세일과 영화를 촬영하는 도중에 의견 차이가 있지는 않나. =물론 있다. 그리고 케이트에게 연출 지시를 하는 건 다른 배우들에게 할 때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심지어 문자를 보낼 때도 대문자로 써서 보내면 “지금 소리지르는 거야?”라고 바로 답이 온다. (웃음) 다행스러운 점은, 그 모든 것이 이해와 신뢰가 바탕이 된 의사소통이라는 점이다. 스크린에서 보여주는 터프한 여성 캐릭터에 대해서도 취향이 일치한다.
-강인하기만 한가? 그녀는 섹시하다. =그건 케이트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웃음) 하지만 애쓰지 않아도 그렇게 보이면 다행이다. 여배우가 섹시해지려고 애쓰는 순간, 그 장면은 유치해진다.
-그렇다면 상대 배우와의 키스장면은 어떻게 연출하나.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즐겁고 화기애애한 가운데 연출됐다. 조금은 어색했다. 다른 장면에서는 배우들도 스탭들도 아낌없이 의견을 내면서도, 유독 그 장면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웃음) 가장 불편한 건 아마도 콜린이었을 것이다. 키스를 하면서도 어깨에 팔을 두르는 등의 재량을 발휘할 여유가 없다. 자연스럽게 허벅지에 손을 올려보라는 지시를 할 때면, 나 자신이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아, <언더월드> 때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컷” 사인을 아주 크게 외쳐야 한다는 거다. 배우들이 못 듣고 계속 키스를 하면 피가 끓어오른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