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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예정된 운명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

그러니까 이건 죽어도 상관없는, 딱 그만큼의 사랑 이야기다. 1973년의 마드리드, 당시는 분장을 하지 않고도 웃길 수 있는 코미디언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주인공 하비에르(카를로스 아레세스)가 이제 막 광대로 데뷔하려던 찰나이기도 했다. <광대를 위한 슬픈 발라드>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슬픈 광대’다. 그의 몸엔 대대로 이어진 광대의 피가 흐르지만, 그건 애초 남을 웃길 수 있는 능력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얼굴도 모른 채 어린아이는 동심 없이 자랐으며, 광대였던 아버지는 1937년 내전 당시 목숨을 잃었다. 어른이 된 그의 얼굴엔 그래선지 슬픔이 배어 있다. 서커스 데뷔 첫날, 하비에르는 나탈리아(캐롤리나 방)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우스운 광대 세르지오(안토니오 데 라 토레)의 연인이다. 이렇게 시작된 세 남녀의 연애는 처음부터 무섭도록 섬뜩하게 진행된다. 한 여인을 둘러싼 두 남자의 투쟁, 그들이 그리는 바로크 스타일의 문양은 상상 이상으로 잔인하고, 영화에선 이를 ‘운명’이라 부른다. 죽기 직전 하비에르의 아버지가 남긴 말, 그는 운명을 거스르고 행복해질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라 말한다. 그건 다름아닌 복수. 생각해보면 이 운명은 역사가 만들어낸 결과다. 비록 복수의 고통을 견디는 것이 개인의 몫이라 할지라도, 영화에서처럼 그들이 택한 고된 사랑을 우린 운명이라 여겨도 될 것이다. 커다란 십자가에서 운명의 순간을 기다리는 것은 애초 예정된 이들의 몫이었다고.

이야기는 20세기 유럽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같은 민족끼리 전쟁이 벌어졌고 그리하여 군부가 득세하며 36년간의 독재가 이어졌다. 주인공 하비에르는 그 독재의 시작에 홀로되어서 독재가 끝난 뒤 광대가 된 인물이다. 배역뿐 아니라 영화의 주요 배경 역시 프랑코 정권이 제공하긴 마찬가지다. 150m가 훌쩍 넘는 웅장한 십자가와 거대한 지하 성당이 자리한 마드리드 부근의 ‘전몰자 계곡’은 그 광대함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이 창출한 건축이며 또한 독재자의 무덤이란 이유로 현재까지 ‘합당한’ 과소평가를 받는 곳이다. 관광지로서의 의미밖에 부여받지 못한 그 장소를 무대로 알렉스 데 라 이글레시아 감독은 역사적 울분을 내뱉기로 작심한다. 그는 집단의 기억을 간직한 ‘캐릭터’를 설정해 이들이 보존하는 기억을 특정 ‘장소’에 심는다. 즉 프랑코주의가 심어놓은 환기력을 가진 건축물에 특정 인물을 대입해 공동의 기억을 재구축하는 작업을 벌인다. 그 결과 만들어진 영화를 통해 관객은 그들을 심판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를 수 있다. 이 작품이 지닌 극도의 그로테스크함은, 그러니 관객의 심판에 ‘감정’이 스며들지 않게 하려고 고안된 장치쯤이라 여겨도 될 것이다. 마치 인형극을 보듯, 감상자는 각각의 인물이 지닌 욕망을 자신의 것이 아닌 제3자의 것으로 삼고 영화를 본다. 두 남자의 혈투가 진정 사랑을 위한 것인지, 소유 그 자체를 위한 것인지는 결국 캐릭터들의 몫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통해 살피면 이 시놉시스를 온전히 새롭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감독은 이미 1999년에 영화 <웃다 죽기>를 통해 한번 ‘프랑코 정권하의 두 라이벌 코미디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다. 다만 이번은 좀더 상징적이며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전작과 구별된다. 정치적 은유가 ‘광대’ 캐릭터에 스며들어 있고, 이를 통해 좀더 누아르적으로 이야기를 풀었다는 것도 다르다. 2010년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 격의 ‘은사자상’을 비롯해 ‘각본상’을 수상했고, 국내에서는 지난해 전주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외국의 몇몇 평자들은 이 작품을 가리켜 ‘펠리니와 타란티노가 만난 영화’라 칭하기도 했고, 혹은 박찬욱의 <박쥐>가 개봉되던 시기에 자주 보였던 단어인 ‘그로테스크와 욕망, 낭만주의’ 등을 사용해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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