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한 영화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이미지들이 진짜로 ‘진짜’인지 진짜로 ‘가짜’인지를 구분하는 게 무의미해졌다. 다큐멘터리는 잘 짜인 재밌는 이야기를 고민하고, 픽션영화의 감독들은 얼마나 자신들이 열심히 ‘발품’팔아 시나리오를 완성했는지를, 그렇지 않으면 누구의 어떤 ‘실화’를 바탕으로 했는지를 내세우니 말이다. 전자의 ‘진정성’이 줄어들었다고, 혹은 후자의 ‘상상력’이 약해졌다고 비판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여기/저기, 나/너, 사실/허구를 까칠하게 따져 무엇하나, 이리저리 섞어서 적당히 볶다보면 새로운 맛의 퓨전요리가 나오게 마련 아닌가. 알레산드로 코모딘 감독의 <자코모의 여름>이 7월 초에 프랑스에서 개봉해 현재까지 꾸준히 입소문을 타며 관객몰이를 하는 이유는, 올해 유난히 흐리고 우중충한 파리의 여름에 화사한 이탈리아의 하늘을 선사했기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다. 이 영화의 매력은 바로 이도저도 아닌 ‘모호함’에서 비롯된다.
코모딘 감독의 첫 장편인 <자코모의 여름>은 8살에 뒤늦게 발견된 뇌막염으로 청각을 잃고 10년간 남과는 ‘다른’ 삶을 살아온 한 소년이, 18살이 되는 해에 다시 남과 ‘같은’ 삶을 살기로 결정하고 청각이식수술을 받은 직후 시작된다. 2009년, 갓 19살이 된 소년은 그의 오랜 친구 스테파니아와 함께 여름휴가를 떠나기로 한다. 그들은 아름다운 호수에서 수영하고, 외딴집에서 음악을 연주하고, 놀이공원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온다. 여기까지 지어낸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굳이 연출의 흔적을 찾자면, 스테파니아는 코모딘 감독의 친여동생이라는 점, 그들이 떠날 휴가지 리스트를 감독이 사심없이(?) 제안했다는 점, 그리고 감독의 카메라는 이 두 사람의 여름을 조심스럽게 카메라에 담았다는 정도가 될 것이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대상, 로카르노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한 것을 제외하고도 전세계 40여개의 크고 작은 영화제에 초청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코모딘 감독과 인터뷰 자리를 가졌다.
그들은 연기를 한 게 아니에요
<자코모의 여름>의 알레산드로 코모딘 감독
-처음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로 촬영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자코모는 내 가장 친한 고향 친구의 남동생이자, 내 여동생 스테파니아의 오랜 친구다. 그가 청각이식수술을 결심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울컥하는 무언가를 느꼈다. 10년간 청각에 의지하지 않고 살아온 그에게 듣는다는 의미는 뭘까. 기적 같은 건가, 아니면 그만의 순수성, 자연성을 잃게 되는 건 아닌가…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수술을 감행한 2008년 여름을 전후로 그의 생활을 찍기 시작했다. 영화에 사용한 장면은 하나도 없지만….
-그럼 어떤 경위로 다큐멘터리 드라마라 불리는 현재의 편집본이 나오게 되었나. =사실대로 얘기하자면, 나는 대사를 만들어내고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데 재능도 없고 관심도 없다. 현실을 관찰하면서 무한한 이야깃거리와 구조들을 발견해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 영화의 구조는 단순하다. 자코모는 촬영 당시 인생에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는 청소년이었다(지금 그는 이미 ‘성인 남자’가 되었다!). 특별한 시나리오를 구상하지 않고, 그가 당시 실제로 느끼고 있을 에너지, 혼란, 흥분, 서투름, 기대감 등등 일련의 감정상태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상황과 장소, 자연 배경만을 고민했다. 그래서 내가 잘 알고 있는 고향의 휴가지들을 생각했고, 스테파니아와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한 거다. 그다음은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과정을 그냥 찍어서 편집한 것이다.
-그래도 두 사람이 전문 배우도 아니고, 카메라가 상황에 끼어들게 되면 부자연스러워지게 마련인데, 연기 지도는 어떻게 했나. =지도한 부분은 하나도 없다. 촬영 내내 카메라는 인물들의 움직임을 따라다니기만 한 거다. 그들은 ‘연기’한 게 아니라, 각각의 상황을 ‘산’ 거다. 그러니 각각의 장소에서 일어난 모든 장면은 한번씩만 촬영되었다.
-생각해뒀거나 제작 중인 차기작이 있나. =아직까지는 없다. 지금은 <자코모의 여름>을 소화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