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일년도 못 되는 기간을 보냈을 뿐이면서 마치 한 십년 공부하고 온 것처럼 자꾸 프랑스 유학 시절을 들먹거리게 되어 민망한데, 또다시 그때 이야기다. 세상에 나보다 잘난 인간은 없을 것만 같았던 만 스무살 때, 나는 프랑스 연수를 꿈꿨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87년 대선결과를 보고는 “역시 백성들은 무식해. 똑똑한 내가 정계든 관계든 진출해 뭔가 훌륭한 일을 마구 해야지” 하는, 거의 엽기 수준의 방약무인 정신으로 외무고시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외시를 보려면 제2외국어를 해야 하는데 그럼 현지에서 잘 배워오는 게 젤 좋겠지 하는, 형언할 수 없이 단순하고 또 말이 안 되는 논리로 프랑스행을 결정한 것이다. 어떻게 사고의 회로가 그런 비약의 길로 흐를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경이로울 따름이다. 여하튼 학교를 정하고 여권과 비자를 받아놓고는 부모님께 계획을 알렸다. 쉽게 말해 “나 가야겠으니 돈 좀 줘요”였다.
자신만만한 척했고 실제로 자신만만하기도 했었으나 막상 비행기를 타고보니 간이 팍 찌그러들면서 오로지 화장실 갈 때 돈 안 잃어버리게 하는 데에만 온 신경을 집중했다. 이 돈이랑 주소 잃어버리면 난 끝이야. 심장 혼자 몸 밖으로 튀어나가 뛰고 있는 듯 마구 두근거리는 박동이 버거워 졸지도 못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제야 제정신이 들면서 두려워졌던 것이다. 파리에서의 초기 생활은 매일같이 외로워 비싼 전화카드 써가며 집에 전화를 자주 해댔는데, 늘 짜증이 머리 끝까지 뻗친 채 끊었다. 그리움에 부풀어 걸어보면 지금 딸이 지구 어디를 헤매고 있는지도 짐작이 안 간 채 오로지 몸 성한지만이 궁금한 엄마는 “뭐 좀 먹었냐, 춥진 않냐, 거기 어디냐” 세 가지 질문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하나마나한 얘기나 더듬거리느라 비싼 통화시간을 다 써버렸던 것이다.
어린 딸이 엄마에게 전하는 소식이란 늘 다 가슴철렁하고 한심한 것들이었다. 엄마 나 오늘 집에 불냈어, 엄마 나 오늘 집에서 쫓겨났어, 엄마 나 오늘 보증금 다 떼였어, 엄마 나 너무 춥고 아픈데 여긴 약국에서 약을 안 판대, 엄마 나 돈 떨어졌어. 세상은 넓고 잘난 사람들은 발에 채일 듯 많고 나는 ‘somebody’이긴커녕 ‘anybody’도 못 되는 ‘nobody’일 뿐이라는 진리를 터득한 채, 그저 먹어댄 탓에 살만 디룩디룩 쪄 돌아온 딸을 엄마는 개선장군 맞듯이 맞았다.
이제 벌써 십수년 전 일인데 엄마는 아직도 그때 일을 후회한다. 내가 미쳤어. 알지도 못하는 곳에 널 혼자 보내다니. 그럼 그때 말리지 그랬어? 니가 꼭 가야 된대서 그럼 꼭 가야 되는 줄 알았지 뭐. 너무 순식간이라서 그냥 놓쳐버렸나봐. 집에 불내고 니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뛴다. 그럼 그때라도 쫓아오지 그랬어? 그런데 말야, 그땐 나도 그런 생각도 미처 안 들고…. 너한테 무지 중요하고 니가 꼭 하고싶었던 일을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빌리 엘리어트>를 보면서 가슴이 찡했다. 내 자식이 나중에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제발 좀 안 했으면 좋을 일을 하겠다고 나설 때, 예를 들어 비둘기 조련에 평생을 바치겠으니 집 베란다에서 비둘기를 좀 키워야겠다고 한다든가, 병아리 성감별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며 병아리 수백 마리를 방에 풀어놓거나 한다면, 나는 저 아버지처럼, 비록 스스로는 납득이 도저히 안 가더라도, 축복하며 도와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아버지에게 발레란, 나한테 비둘기 조련 만큼이나 기절초풍할 일일 텐데.
뒤이어 내 부모님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까지 부모님께 뗀 공수표는 수천장이 넘는다. 외무고시는 그중 좀 괜찮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차마 밝힐 수 없는 엄청 부끄러운 것들도 부지기수다. 이거 하겠다고 돈 타내고 저거 하겠다고 타내고, 그때마다 부모님은 도저히 수긍이 안 가 했지만 매번 결국 길을 열어주셨고 비웃고 싶어하는 남들 앞에서 딸의 입장이 되어 옹호를 해주셨다. 그런 게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생뚱맞은 것조차도 딸의 선언과 함께 관심을 가지려고 무진장 노력해 관심을 갖게 되고, 그런데 그럴 때쯤이면 딸의 관심은 또다른 기상천외한 것으로 이미 넘어가 있고, 그런 무한순환이었다. 자신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세계로 떠나보내며 아들을 꼬옥 껴안아 번쩍 들어올리는 빌리 아버지의 낯빛에서 나는 우리 부모님을 보았다. 빌리는 결국 대성공을 했고 나는 많은 돈을 낭비한 채 그냥 보통 아줌마가 됐지만, 결국 그럴 거였다면 왜 그 많은 돈을 써야 했던 건지 나 스스로도 도저히 알 수가 없지만, 부모 입장에서 그 결과는 무엇이 됐건 사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뻔뻔한 생각이 드는 이유는, 고작 왕초보지만 나도 이제 부모가 됐기 때문인 것 같다. 설혹 아이가 정말 비둘기 조련의 길로 나선다고 해도 그것을 진심으로 추구한다면, 먼발치에서나마(비둘기를 도저히 가까이서 쳐다볼 수는 없으므로) 축복해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슬몃 드는 것이다. 물론 먼훗날의 일이고, 결국 닥치면 비둘기와 엄마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며 게거품을 물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말이다.
오은하/ 대중문화평론가 shimb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