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멋지고 우아한 음악을 쓴 분의 입이 저렇게 더러울 리 없죠.” 연극 <아마데우스>(피터 샤퍼 작(作))를 보고 마거릿 대처 총리는 연출자 피터 홀을 타박했다. 그게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이라 얘기해줘도 총리는 막무가내였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시네요. 그분이 그랬을 리 없다니까요.” 연출자는 결국 지저분한 말버릇의 증거로 모차르트가 쓴 편지의 원본을 복사해 다우닝가 10번지로 보낸다. 물론 그것으로 총리의 마음을 돌려놓을 수는 없었다고.
냄새 나는 음악
피터 홀이 총리관저로 보냈다는 모차르트의 편지들 중에는 틀림없이 사촌인 마리아 안나 테클라 모차르트에게 보낸 연서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자, 잘 자요. 하지만 먼저 침대에 터져 나오도록 똥을 싸세요. 잘 자요, 내 사랑. 당신의 입속으로 당신의 똥꼬를 밀어넣어요.”(1777년 11월5일자) “잠깐 이리 와요. 내가 똥을 쌀게요. 그래주면 이 높고 강한 분께서 당신이 친절하다고 생각하고 엉덩이를 때려줄게요.”(1778년 12월23일자)
지금까지 남아 있는 모차르트의 친필 편지는 모두 371통. 그중에서 똥, 똥구멍, 똥구멍 핥기 등 지저분한 표현이 들어 있는 것은 39통. 대략 10통 중 1통의 비율로 냄새나는 표현을 사용한 셈이다. 수신자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아버지에게 20회, 아내에게 6회, 사촌에게 6회, 여동생에게 4회, 어머니에게 1회 등, 주로 가족 사이에서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게 저속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단 2회에 불과하다.
남세스런 표현은 다른 가족들의 편지에서도 발견된다. 가령 어머니 안나 마리아가 남편인 레오폴드에게 보낸 편지에도 모차르트가 사촌 마리아 안나 테클라에게 사용한 것과 똑같은 표현이 들어 있다. “당신의 입속으로 당신의 똥꼬를 집어넣으세요. 잘 자요. 하지만 먼저 침대에 터져 나오도록 똥을 싸세요.” 이것으로 보아 이게 모차르트만의 기벽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만 다른 가족은 이런 지저분한 표현을 모차르트만큼 빈번히 사용하지는 않았다.
‘대변’이나 ‘항문’과 관련된 농담은 그의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대표적인 것이 <디피실레 렉투>(difficile lectu K. 559)라는 제목의 카논(돌림노래)이다. 노래의 가사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되어 있다. ‘Difficile lectu mihi mars et jonicu difficile.’ 언뜻 보면 라틴어 문장으로 보이나, 실은 아무 의미가 없는 가짜 문장에 불과하다. 이 곡은 모차르트가 자신과 절친한 관계를 맺고 있던 테너-바리톤 요한 네포묵 파이얼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파이얼의 발음이 매우 독특하다는 데에 착안한 음악적 농담이었다. 그 가짜 라틴어 문장의 앞부분을 파이얼의 발음으로 읽으면, “Leck’ du mich im Arsch”라는 문장으로 들리게 된다. 독일어로 ‘내 똥꼬를 핥으라’는 뜻이다. 뒷부분의 ‘jonicu’라는 단어는 노래 속에서 여러 번 반복된다. “조니쿠, 조니쿠, 조니쿠…”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앞뒤 음절이 뒤섞여 청중의 귀에는 ‘쿠조니’(cujoni)로 들리게 된다. 이탈리아말로 ‘불알’이라는 뜻이다.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파이얼이 진지하게 노래를 마치자, 청중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그 악보를 뒤집어 뒷면에 미리 작곡된 또 다른 돌림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오, 멍청한 파이얼’(O du eselhafter Peierl! K. 560a) “오, 너 파이얼 같은 당나귀야. 너는 머리도 다리도 없는 말처럼 게으르구나. 너는 참 대책이 안 서는구나. 오 내 친구여, 빨리 내 똥꼬를 핥아줘. 아, 내 친구여, 미안해. 엉덩이를 채찍으로 때려주마. 파이얼! 네포묵! 나를 용서해줘.”
‘분변학’(scatology)이라는 말이 있다. 배설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단어의 2격 ‘스카토스’에서 유래한 말로, 학문의 여러 분과에서 매우 다양한 뜻으로 사용된다. 의학에서는 인간의 분뇨를 통해 병증을 알아내는 분야를 가리키고, 생물학에서는 동물의 분뇨를 통해 그 동물의 섭생과 건강상태를 연구하는 분야를 가리킨다. 고생물학의 영역에서는 화석이 된 동물의 대변을 연구한다는 의미에서 이를 ‘분석학’(糞石學)이라 옮기기도 한다.
한편,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분변학은 배설이나 배설물에 집착하는 증상, 혹은 그 증상을 연구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특히 이 집착이 성욕과 연결된 증상을 가리킬 경우 그것을 ‘분변음욕증’이라 옮기는 모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마 입 밖으로 꺼내기도 어려운 분위기이지만, 일본의 포르노 사이트에 들어가면 상대가 배설을 하는 것을 보거나 상대의 배설물을 몸에 바르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이들이 등장하는 동영상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차르트의 분변증적 표현에도- 특히 사촌 마리아 안나 테클라에게 보낸 편지에는- 살짝 성적 뉘앙스가 섞여 있다. 실제로 오스트리아의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자신이 소장한 모차르트의 편지를 프로이트에게 보내 그에 관한 정신분석을 요청한 바 있다. 프로이트는 이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물론 모차르트의 분변증이 성욕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그것은 철없는 아이의 짓궂은 장난에 가까워 보인다.
모차르트는 왜 항문기 아동의 취향을 보였을까? 내분비학자 벤자민 심킨에 따르면, 모차르트의 분변증은 투렛 증후군의 일환이라고 한다. 371통에 달하는 모차르트의 편지와 동시대인들이 증언하는 일화를 면밀히 분석한 결과, 심킨은 모차르트에게서 남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반향어(echolalia), 남세스런 말을 늘어놓는 추어증(coprolalia), 대변과 배설에 집착하는 분변증(scatology) 등 투렛 증후군에 속하는 증세가 뚜렷하다는 진단을 내린다.
‘문학적’ 현상으로서의 분변증
하지만 남세스런 표현이 주로 가족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의 분변증(?)은 병적이라기보다는 의식적으로 통제 가능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의 가족들도 적어도 한번은 서로 그런 편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보아 분변증적 표현은 가족들 사이의 가벼운 놀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모차르트가 사용한 표현들도 실은 그가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그가 사촌 마리아 안나 테클라에게 쓴 것과 똑같은 표현을 그의 어머니도 아버지에게 사용한 바 있다.
모차르트의 편지와 노래 속에 등장하는 분변증적 표현은 오늘날까지도 모차르트 학자들 사이의 뜨거운 주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90년대에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주장, 즉 그의 분변증이 투렛 증후군의 증상이었다는 견해는 오늘날 공식적으로는 그다지 신뢰받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남세스러운 말버릇은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 ‘문학적’ 현상에 가깝다. 한마디로 그것은 멀리 중세의 카니발까지 이어지는 분변문학의 전통에 속한다고 봐야 할 거다.
모차르트는 어려서부터 섬세한 예법과 발달한 예술을 가진 궁정문화 속에서 살아야 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자연에서는 멀어지는 법. 모차르트는 아이처럼 유치한 분변증적 표현을 통해 비엔나의 고도로 인위적인 환경이 주는 긴장감과 피로감을 배설하려 한 게 아닐까? 모차르트의 것은 투렛 증후군이라는 병리현상도 아니고, 분변음욕증이라는 변태 성욕도 아니다. 그의 카타르시스에는 문명의 스트레스를 배설하여 자연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어떤 민중적 건강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