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이름은 ‘백일몽-아마추어 야외노출 게시판’, 게시물 제목은 ‘여교사의 숨겨진 얼굴 Part13’. 페이지를 열면 피사체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나체가. 그녀는 정말 여교사였다. 그녀는 행위를 강요당하지 않았으며 촬영 여부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바로 얼굴 없는 나체의 주인공임을 알리고 싶었다는 뜻은 아니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얼굴 없는 나체들>은 ‘직촬’이라는 딱지가 붙어 유통되는 인터넷 포르노의 주인공이 된 여자와 그녀의 파트너가 각각 성장하고 만나고 사귄다기보다 섹스하고 파국으로 이르는 과정을, “엄밀한 의미에서 두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익명성이 박살나는 순간까지를 한발 물러서서 침착하게 그려낸다. 두 주인공을 관찰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마치 다큐멘터리에서도 유난히 무감동한 내레이터처럼 느껴진다. 예컨대 웹상에서 미치의 ‘성욕처리녀’ 미키인 요시다 기미코의 연애에 미숙했던 사춘기에 대해 묘사할 때는 이렇게 표현한다. “대체로 연애를 주저하게 만드는 것은 열등감인데,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사람을 좋아할 수 있는 시기에 그녀는 누군가를 좋아해본 기억이 없다.”
인터넷 포르노를 소재로 하고 있다고 하지만 <얼굴 없는 나체들>은 현대인이 기꺼이 소비하고 그 주체가 되는 ‘얼굴 없는’ 자아의 실상을 짚어낸다. 뿐만 아니라 최근 오로라시의 한 극장에서 총기를 난사한 제임스 홈스에 대한 그의 주변인들의 코멘트를 읽으며 드는 의문에 대한 응답이 될법한 말도 등장한다. “한 소년이 흉악한 사건을 일으키면 그가 다니던 학교의 책임자는 대부분 그가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성명을 발표하는데, 이는 일종의 책임 회피 수단이다. 무심코 원래부터 요주의 학생이었다는 말을 해버리면 그 즉시 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책임을 추궁당한다. 진정한 모습을 몰랐다. 그렇게 말해두는 게 제일이다.”
자신에 대한 무지로부터 비롯된 두려움과 호기심, 타인의 욕망을 통해 확인받는 자아, 얼굴 없는 나체로부터 느끼는 해방감. <얼굴 없는 나체들>은 보여지는 자를 보는 자에 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