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깔깔 웃었더랬다. 최근 민주통합당 정청래 의원이 공개한 ‘문화권력 균형화 전략’이라는 문건을 보고 말이다. 이를테면 “(좌파 문화권력은) 반미 및 정부의 무능을 부각시킨 <괴물>, 북한을 동지로 묘사한 <공동경비구역 JSA>, 국가권력의 몰인정성을 비판한 <효자동 이발사> 등을 지속적으로 제작·배급” 같은 대목.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고지전> <의형제> <코리아> 같은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똑같은 이유로, <연가시> 같은 영화는 ‘정부의 무능을 부각하고 사회 불안을 조장하며 자본주의 기업의 몰인정성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좌파영화’로 분류될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한국영화 대다수가 ‘국민의식 좌경화’를 위해 만들어진 셈이다. “반정부적이지 않으면서도 작품성과 상업성을 두루 갖춘 우파영화가 영화시장을 주도하도록 분위기 조성” 같은 대목도 폭소를 자아냈다.
하지만 이 문건을 자세히 보면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좌파집단에 대한 인적청산은 소리없이 지속 실시’라는 항목 아래에는 “문화부의 지시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위원장을 교체한 이후 위원장이 인적청산을 진두지휘하고 BH(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을 통해 위원장의 인적청산작업을 지속 감시·독려”라는 글이 적혀 있는데, 실제로 MB 정권 들어 영화진흥위원회는 물론이고 문화예술위원회,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수장이 바뀌었고 대대적인 인사가 진행됐다. 또 ‘좌파세력에 대한 정부지원금 평가 및 재조정’이라는 항목에는 “문화부 및 기재부의 엄격한 사업결과평가를 통해 09년도부터 좌파단체 지원예산을 근절”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는 독립영화 단체 등에 대한 예산 지원이 끊겼던 사실과 일치한다.
그러니까 MB 정권은 청와대를 정점으로 각 부처, 그리고 각 위원회를 동원해 ‘우파 문화혁명’을 일으켜왔던 셈이다. 그런데 그들이 원한 게 정말로 숭고한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을까. 글쎄, 나는 이 문건이 추악한 진실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 기관을 장악해 ‘우리 사람’을 앉히고 문화 자본의 물길을 틀어 ‘우리 사람’에게 퍼준다는 항목이 빠졌다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 사람’이란 정권 창출에 기여했거나 정권 핵심이 신세진 사람들일 것이다(어쩌면 높은 분이 그냥 아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니까 이들에게 문화란 권력의 떡고물을 배분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튼 이 문건은 우리에게 과제를 부여한다. 우선 이 문건의 작성자를 명확히 밝히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 계획이 실행됐는지 밝히는 일이다. 누가 인적청산을 지휘했고, 누가 기업들을 압박해 ‘우파영화’를 만들게 했는지, 누가 이에 적극 동조해 사익을 얻었는지 등을 규명해야 한다. 또 이 문건의 나머지 부분(소문에 따르면 전체가 100페이지 이상이라고 한다)을 공개해 이 정권이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했는지 밝혀내야 한다. 다시는 정치권력이 문화를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로 재단하고 자기 사람을 심는 장으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