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것은 낯설다. 낯선 것은 신선하다. 미래는 번개처럼 빠르게 우리 곁에 다가오지만 그 생경함과 거침없는 발걸음에 그만 알아볼 틈도 없이 흘려보낸다. 여기 미래를 찬찬히 보고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축제의 장이 열린다. 영상과 미술, 뉴미디어의 접목을 통해 영상예술의 오늘과 미래를 가늠해온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이하 네마프)이 올해로 열두 번째 축제의 막을 연다. XY 글로컬 뉴미디어(Glocal New Media)라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경쟁부문 ‘글로컬 구애전’, 비경쟁부문 ‘글로컬 초청전’ 등 총 5개 섹션을 통해 20개국에서 초청된 141편의 장·단편 영상물이 상영된다.
명실상부 국내 유일의 뉴미디어아트 축제로 자리잡은 네마프는 12회를 맞아 그간 접하기 어려웠던 뉴미디어 예술세계를 좀더 오래, 좀더 편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많은 변화를 시도했다. 오는 7월25일부터 8월11일까지 총 18일간 한국영상자료원, 코레일공항철도 홍대입구역, 미디어극장 아이공 등 다양한 장소에서 만날 수 있을 뿐 아니라 공식 프로그램인 영화제와 전시제의 무료입장으로 장벽을 낮췄다. 각종 전시장에 전시될 작품 역시 무료로 관람 가능하다. 이제 필요한 건 약간의 관심과 가벼운 발걸음뿐이다.
글로컬 초청전 중 디지털 스코프 섹션에서는 디지털의 다양한 화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상상력을 개척한 작품들을 소개한다. 윤정필 감독의 <디지털 자키>(2012)는 디지털 시대의 디제이와 아날로그 디제이들의 비교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초상을 읽는다. 활동 중인 여러 디제이들의 인터뷰와 음악애호가들의 입을 빌려 디제잉 역사를 훑어보는 이 작품은 그 시절 유행했던 다채로운 음악을 눈으로 듣는 즐거움이 있다. 세월의 흐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안정윤 감독의 <신성한 봄>(2011)은 한 여성의 일상과 소소한 소품들을 통해 막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주는 처연함과 공포에도 의연하게 세월을 응시한다. 노모의 주름진 얼굴과 쩍쩍 갈라진 나무를 연이어 붙이는 시적 영상에는 세월의 무상함이 묻어나지만 세월을 긍정하는 사소한 손짓을 통해 주름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 황선숙 감독의 <허공, 그늘>(2012)은 시적 영상이 돋보이는 또 한편의 작품이다. 동양화를 전공한 감독의 감성은 그림자 같은 흑백의 영상과 화면에 낮게 깔린 전통음악을 통해 한편의 수묵화가 되어 피어난다.
대안영상 미디어 작가를 발굴, 장려하기 위한 경쟁 섹션 글로컬 구애전에서는 상상력과 표현의 한계에 도전하는 흥미로운 작품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모인 600편의 작품 중 선정된 50편의 재기발랄한 실험들은 그야말로 미디어 영상예술의 최전방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주상 감독의 <픽토그램 인사이드>(2011)는 기발한 상상력의 즐거움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림문자인 픽토그램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하는 이 작품은 팍팍한 일상에서 건조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향한 은유이자 우화다. 과거로부터 날아온 반성문도 있다. 조민호 감독의 <에피소드_익명의 기념비>(2011)는 숭례문 전소 사건 이후 진행된 문화재 발굴과정에서 발견된 숭례문 앞 땅속 지하벙커를 통해 공간의 기억, 나아가 왜곡되고 고립된 역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차지량 감독의 <일시적 기업>(2011)은 개인의 질서가 기업에 흡수된 가정법과 질문을 통해 현실의 모순을 고발한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직장생활 속에서 개인이 사회에 저항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실험하는 이 작품은 수많은 질문과 상상을 통해 관객의 문제의식을 환기시킨다.
추라얀논 시리폴 감독은 <단편적인 기억의 역사>(2010)에서 기억의 생존문제를 제기한다. 낭렁 주민들의 인터뷰를 통해 단편적인 기억의 각인들이 어떻게 조합되고 전승되는지를 추적하는 이 작품은 죽은 이에 대한 애도인 동시에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역사이기도 하다. 생경하고 낯선 작품들도 많지만 어려워할 필요 없다. 그저 즐기시길. 당신이 이 눈덮인 들판에 첫발을 디딘 사람이며 보고 느끼는 그대로가 뒷사람들이 나아갈 지침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