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스페셜 > 스페셜2
아이돌 클라우드
강병진 장영엽 2012-07-26

무한 확장하는 거대한 아이돌 산업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SM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영화 < I AM. >의 한 장면. 지난 2011년 10월23일. SM 소속 아이돌 그룹들은 아시아 가수 최초로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 무대에 올랐다.

적금 하나, 보험 하나, CMA 통장 하나. 가진 금융상품이라고는 이것밖에 없는데, 어느 날 증권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 광고에서 티아라의 함은정은 “당신의 자산, 대우받고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함은정의 질문이 이끈 호기심은 내 자산의 안정성이 아니었다. ‘자산.’(資産) 개인이나 법인이 소유하고 있는 유형·무형의 재산. 이 단어가 무대에서는 <롤리폴리>를 부르고 <우리 결혼했어요>에서는 결혼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돌이 던지기에 적합한 메시지일까? 금융광고는 신뢰성을 우선으로 하고, 성공모델의 표본을 내세우며 지킬 자산이 있는 30, 40대 이상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다. 그런 광고에 대부분 부모가 자산관리를 해주는 아이돌 스타가 출연한다고 했을 때, 생각해볼 수 있는 이유는 몇 가지가 되지 않았다. 티아라라는 걸그룹에 빠진 수많은 삼촌 팬들을 겨냥했을까? 아니면 2012년 한국사회에서는 아이돌이 누구보다도 강력한 성공모델인 걸까? 그러고보니 이전에는 아이돌이 출연하지 않았을 법한 광고들이 이미 아이돌을 앞세우고 있었다. 소녀시대의 침대 광고, 닉쿤의 정수기 광고, JYJ의 두통약 광고 등등. 대중문화의 기호와 흐름에 가장 빠르고 강하게 반응하는 광고업계가 지금 아이돌의 위치를 정확하게 드러내고 있을 것이다. 아이돌은 이제 소년, 소녀 팬을 넘어 삼촌 팬과 이모 팬까지 들뜨게 만드는 스타에 머물지 않는 듯 보인다. 특정한 세대와 타깃에 국한되지 않은, 사실상 대한민국 전체가 바라보고 있는 이상향에 가까울 것이다.

SM 아이돌에게 열광하는 외국 팬들.

음반 수익 감소가 영역 확장의 시작

2012년은 아이돌의 영역 확장사에서 뚜렷한 분기점을 남긴 해로 기록될 듯 보인다. JYP엔터테인먼트는 박진영이 주연한 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를 공동제작했고, 이미 영화와 드라마 제작에 나선 SM엔터테인먼트는 합작투자를 통한 외식법인을 설립해 레스토랑을 열었으며 여행업체를 인수해 ‘SM타운 트래블’을 설립, 여행사업에도 뛰어들었다. YG엔터테인먼트의 영역 확장도 흥미롭다. 제일모직과 50 대 50의 확장법인을 세워 내년 봄 시즌부터 전세계 아이돌 팬을 대상으로 신규 브랜드를 선보이기로 했다. 아이돌의 영역 확장에 더해 아이돌을 만들고 관리하는 회사까지 이제 규모의 경제(생산규모가 증가할수록 생산비 대비 생산량 증가율이 커짐으로써 발생하는 이익) 단계로 접어든 걸까? 아이돌이 대중문화의 대세가 되고, 아이돌이 한류의 첨병이 되면서 일어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아이돌 산업이 이렇게까지 확장될 수 있었던 근본적인 동력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할 때다.

아이돌 산업의 관계자들이 먼저 꼽는 확장의 이유는 물론 ‘수지타산’이다. 보통 하나의 아이돌 팀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데 들어가는 돈은 “적게는 10억원, 많게는 20억원”이다. 국내시장에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아이돌은 그리 많지 않다. 가수 박진영과 H.O.T.의 매니지먼트를 담당했고 다국적 아이돌 그룹인 ‘크로스 진’을 제작한 아뮤즈 코리아의 홍현종 대표는 “음원 사이트에서 1등을 아무리 오래 해도 유지비용의 3분의 1 정도만 채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옛날에는 CF 한편 수익이 많게는 10억원에서 적게는 2억원 정도였다. 그런데 앨범 수익이 어느 정도였냐면, 1만원짜리 CD 한장을 팔면 중간마진 빼고 6천원 정도가 들어왔다. 그러면 100만장을 팔면 60억원인 거다. 히트를 하면 하루 주문량만 3만장에서 5만장인 시절이었다. H.O.T.는 3집 이후에 선주문만 70만장이 들어왔었고. 음반 수입이 그만큼 되기 때문에 개인적인 꿈이나 자기만족이 아니면 CF나 연기를 하려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10여년 전 한국 음반시장의 규모는 약 4천억원대였다. 2011년 기준으로 보면, 현재의 규모는 7500억원 정도. 이 가운데 6700억원 정도가 온라인 음원시장이다. 시장의 규모는 확대됐고 가온차트가 발표한 지난 2011년 음원 종합차트 100에서 따르면 아이돌 가수는 53개를 차지했다. 음반 종합차트 톱100에서도 아이돌 가수 앨범의 점유 수가 74개로 음원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음반시장에서 수익을 나누는 시스템과 지분은 달라진 상황이다. 관계자들은 유통 플랫폼과 이동통신사업자가 수익의 절반을 가져가는 구조라고 말한다. SM, JYP, YG 등 7개의 엔터테인먼트사가 출자해 만든 음원유통회사인 KMP 홀딩스의 홍상욱 본부장은 “메인 3사를 제외하면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아이돌이 다양한 채널의 TV 프로그램을 접수하고, 아이돌을 극장에서도, 뮤지컬 무대에서도, 빅뱅의 경우처럼 서점에서도 만날 수 있게 된 현재의 동인은 결국 음반시장의 붕괴라는 이야기다.

2PM, 일본 공연.

합숙을 통한 육성은 한국만 가능한 시스템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인 프레데릭 마르텔이 쓴 <메인스트림>에서 SM의 이수만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연예인들은 다목적 스타들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들은 노래, 춤, 연기, 패션모델 등 이 모든 것을 소화할 수 있도록 양성된다는 거죠. 이들은 아주 다재다능합니다. 우리는 이런 특별한 방법으로 한국식 보이밴드들을 대중 앞에 내보내는 겁니다.” 아이돌이 노래와 춤 이외의 영역에서 만능이 된 데에는 한국식 매니지먼트가 지닌 특징도 한몫을 했다. 아뮤즈 코리아의 홍현종 대표는 말한다. “한국의 경우는 외모와 춤이 좋은데, 노래가 안된다고 하면 데려다가 가르치는 구조의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개발비를 들이는 거다. 그런데 일본과 미국은 개발비를 들이느니 외모와 춤 노래가 모두 다 되는 사람을 찾는다. 인구가 많으니까 가능한 거다. 해외에서는 개발비를 들이는 한국의 시스템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합숙을 통한 육성 시스템도 한국이어서 가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거다. 16살 이상의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먹고 자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합숙생활은 반복된다. 하지만 한국의 부모나 학생들은 그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입시를 위해서는 기숙학원도 보내니까. 말하자면 아이돌 매니지먼트사가 현재는 예술교육의 대안학교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관계자들은 과거에 비해 연기만을 통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20대 초반의 배우들이 적어진 것도 아이돌 매니지먼트의 개발 시스템과 성공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배우를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의 한 관계자는 “요즘은 과거와 달리 연극영화과 1학년생들에게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이들은 이미 대학 입학 전에 오디션을 통해 아이돌 산업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슈퍼주니어 규현.

유튜브, 한류, 해외판권의 관계

아이돌이 ‘자산’을 거론할 수 있을 만큼 자본주의 사회의 성공모델이 된 원인에는 한류시장의 확대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이돌 매니지먼트의 현지화 전략, 그리고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의 확산이 가져온 결과다. <메인스트림>에서 이수만 회장은 말한다. “우리 그룹의 전략은 언어를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우리는 캐스팅을 통해 여러 나라 말을 하는 소년들을 선발해서 보이밴드를 만듭니다. 국적이 서로 다른 슈퍼주니어의 멤버들처럼 말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에게 외국어를 배우게 합니다. 보아가 그런 경우죠. 우리는 보아를 열한살 때 발탁해서 일본어, 영어, 중국어를 배우게 했습니다. 더 많은 걸 배우게 할 때도 있고요. 이어서 치밀한 마케팅 작전을 세우는데, 그 특성은 철저하게 현지화한다는 겁니다. 판촉, 제작, 텔레비전 방송, 이런 모든 것들을 전부 현지 실정에 맞게 개편합니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음악을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볼 때도 글로벌화의 전략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아이돌의 노래를 댄스가요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팝음악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하다. 특히 메이저 회사의 음악은 호주나 핀란드 같은 나라의 회사에 소속된 작곡가들이 만든다. 이들은 켈리 클랙슨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곡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오퍼가 들어오면 회의를 통해 컨셉을 정하고 그렇게 곡이 만들어지지만 다시 한국에서 편곡을 거친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비스트 장현승.

유튜브 등을 통한 온라인 마케팅에 대해 관계자들은 ‘한국식 콘텐츠 관리’가 주요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마케팅 도구로 생각했던 유튜브의 경우, 예상보다 넓은 지역에서 많은 트래픽이 기록됐고, 결국에는 국내에서 유입된 조회수보다 해외 유입량이 많은 걸 확인하면서 더 많은 콘텐츠들이 온라인으로 퍼지게 됐다는 것이다. 아뮤즈 코리아의 홍현종 대표는 이 또한 “한국과 일본의 차이”라고 말했다. “가령 뮤직비디오도 일본은 방송용으로는 15초 분량을 만들고 유료 팬클럽에게는 풀 버전을 보여주는 등 콘텐츠로 낼 수 있는 수익관리가 철저하다. 하지만 한국은 뚜렷한 수익원이 없기 때문에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전략이 가능하다.” 어쩌면 비정상적인 콘텐츠 유통이 한류를 살린 걸까? 한국의 아이돌 산업에 한류는 사업 다각화를 더 넓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아이돌 스타의 드라마 출연을 더이상 ‘가수와 배우 겸업’이라는 단순한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진 것도 이 때문이다. 드라마에 출연해 인지도를 높이고 인지도가 올라가면 CF 출연이 용이하다. 만약 그 드라마가 한류를 타서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수출돼 다시 그곳에서 인지도가 올라가며 또 다른 CF 출연과 MD 상품(팬을 타겟으로 삼은 스타관련상품) 사업을 할 수 있다. 드라마 제작사로서는 아이돌의 출연만으로 해외판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한다. (아이돌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장근석과 소녀시대의 윤아가 출연한 드라마 <사랑비>의 경우, 방영 이전에 이미 제작비의 70%를 해외판권으로 충당했다고 알려졌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가속화될 전망이다. <내 아내의 모든것>을 제작한 수필름의 민진수 대표는 “근래 들어 아이돌 스타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에 대한 해외의 투자기획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JYJ 김준수.

아이돌 산업은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음반시장의 붕괴, 그로 인한 사업 다각화, 사업 다각화를 위한 개발비 투자, 다시 투자 대비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위한 또 다른 사업 다각화의 모색. 지금 한국의 대중문화를 아이돌이 선점할 수 있었던 건, 사실상 아이돌 산업의 자구책에서 파생된 결과로 보인다. 여기에 한류의 흐름이 더해지면서 아이돌은 신자유주의 시대 성공 신화가 되고, 아이돌을 키운 회사는 규모의 경제를 모색하게 됐다. 과연 이러한 흐름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기도 하다. 차우진 음악평론가는 “음악을 만드는 이들의 층위가 다양해졌고, 그만큼의 경쟁이 벌어지기 때문에 이런 동력으로 인해 꽤 오랜 기간 동안 아이돌 산업이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SM의 요식업과 여행업, YG의 의류업 또한 사업 다각화와 함께 한류의 영속성을 위한 전략을 고민한 결과로 보인다. 무엇보다 아이돌의 영속을 가능하게 만들 흐름은 이제 아이돌 산업 외부에서도 아이돌을 필요로 한다는 점이다. TV, 영화, 뮤지컬, 출판만이 아니라 대기업까지. 아이돌의 자산은 그 어느 때보다 대우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