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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작가들의 상상력
이다혜 2012-07-19

배명훈의 <은닉>부터 유현산의 <1994년 어느 늦은 밤>까지

<타워>와 <신의 궤도>의 배명훈이 신작 <은닉>을 발표했다. 배명훈의 소설에서 자주 그랬듯, 이번에도 은경이라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11년차 킬러 앞에. 비공식 국가 조직 소속인 공무원 킬러는 자신의 앞으로의 거취를 결정할 1년 말미의 휴가를 받는다. 휴가 중에 받은 지령은 이상하게도 연극 한편을 보고 소감을 이야기하라는, 살인 명령보다 더 수수께끼 같은 것. 그 연극 무대 위에서 주인공은 아름다울 정도로 정교하게 시체를 연기하는 은경을 본다.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SF 소설가로 알려진 배명훈이지만 SF라는 장르에 그를 가두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이번 신작 <은닉>에서라면. 취향과 죽음과 삶과 정보의 사설을 더듬는 그의 상상력은 언제나처럼 힘이 세다. 듀나의 <제저벨>은 2011년에 출간된 소설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에서 선보인 ‘링 커 우주’의 또 다른 변주다. 링커 바이러스에 의해 새로이 통합된 링커 우주, 그 안의 크루소 행성을 배경으로 제저벨을 타고 항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미 폐기된 과학 이론을 바탕으로 SF 를 쓴다는 게임’과 ‘준비되지 않은 우주여행자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고.

<살인자의 편지>로 제2회 자음과모음 네오픽션상을 수상한 유현산의 두 번째 장편소설 <1994년 어느 늦은 밤>은 지존파 사건을 모티브로 한국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보여준다. 폭염으로도 유명했고 갖은 사건사고가 인장을 남긴 그해에, 괴물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된 인간의 존재를 보여준다. 책 속 ‘세종파’의 범죄행각을 따라가다보면 시대적 비극이 사회적 현실로 울림을 준다. 사회파 미스터리 소설. 도진기의 미스터리 두권도 얼마 전 선을 보였다. 단편집 <순서의 문제>와 장편 <나를 아는 남자>가 같이 출간되었는데, 현직 판사가 쓴 미스터리 소설이라서 관심을 모았다. <순서의 문제>와 <나를 아는 남자> 모두 천재 탐정 진구의 활약상을 보여주는데, <순서의 문제>에서는 저자의 경력이 행간의 활력으로 묻어나는 법정물 <뮤즈의 계시>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범죄의 진실과 돈을 손에 넣는 <순서의 문제>를 비롯한 단편들이 실렸다.

그 고양이가 이 냥이입니까?

일본 드라마의 원작 소설을 찾아서

2012년 2분기 일본 드라마 시청률 1위는 <열쇠가 잠긴 방>이었고, 4위는<삼색털 고양이 홈스의 추리>였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전자가 아이돌 그룹 아라시의 멤버 오노 사토시 주연작이라는 것, 후자 역시 같은 그룹의 멤버 아이바 마사키 주연작이라는 것.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작품 모두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시기 방영된 드라마 중 이 두 작품만의 이야기가 아니 다. <W의 비극>과 히가시가와 도쿠야의 <방과 후는 미스터리와 함께>, 그리고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 4편이 4주 연속 스페셜 방영(<이유> <스나크 사냥><기나긴 살인> <LEVEL7>)되었다. 이중 드라마 <열쇠가 잠긴 방>의 최종 2회 분량은 <검은 집> <푸른 불 꽃>으로 잘 알려진 기시 유스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유리 망치>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검은 집> <푸른 불꽃> 같은 작품들이 인간의 심리를 중심으로 사회적 문제를 미스터리와 엮어낸다면 <유리 망치>는 기발한 트릭이 해소되는 순간까지 복선을 깔아가는 본격 미스터리 소설이다. 2005년에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 상한 <유리 망치>는 완벽한 밀실살인을 완성하는 참신함과 더불어 신참 여변호사 아오토 준코와 보안 컨설턴트(잠긴 열쇠 풀기를 좋아하는 마니아) 에노모토 게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유리 망치> 이후 4년이 지나 두 주인공이 다시 힘을 합쳐 밀실사건을 해결하는 <도깨비불의 집>도 출간되었는데, 드라마 진행상으로는 이 사건이 먼저 방영되었다. 밀실 미스터리에 관 심이 많은 사람에게 추천. 드라마 <삼색털 고양이 홈스의 추리>의 원작이 된 ‘삼색털 고양이 홈스’ 시리즈는 한국에 10권이 번역 출간되어 있고 아카가와 지로의 또 다른 소설 ‘세 자매 탐정단’ 시리즈가 <네자매 탐정단>으로 방영되기도 했다. 아카가와 지로의 스타일은 트릭이나 사회 시스템의 문제가 아닌 유머. 책 자체가 시트콤 같은 분위기를 풍기므로 드라마도 좌충우돌하는 주인공들의 경쾌한 분위기가 묻어난다. 고양이가 묘하게 사건의 진상으로 가타야마를 이끄는데, 그러니까 홈스가 고양이고 왓슨은 인간 가타야마. 드라마에서는 고양이 홈스가 가타야마 앞에서만 인간으로 변신하는데, 이때 인간으로 변신한 고양이 역을 맡은 배우는 거구의 여장 남자 마쓰코 디럭스다. 소설보다 드라마가 박장대소하게 만드는 대목이 바로 이 캐스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