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영화 이후 6년째 다음 작품을 못 만들고 있는 영화감독 민수(백현진)는 어느 날 농염한 매력의 여인 주원(서정)을 만난다. 그녀의 매력에 빠져든 민수는 자신의 집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며 함께 지내자는 그녀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민수는 함께 살면서도 여전히 알 수 없는 그녀의 비밀에 점점 집착하며 그녀가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받아들인다. 자신에 대한 굴종과 학대가 계속될수록 집착을 더해가는 민수와 그럴수록 가학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는 주원의 위험한 관계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든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마조흐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마조히즘’의 유래가 된 소설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 또한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화가 베첼리오 티치아노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를 보고 영감을 얻어 쓴 소설이라 한다. 최초의 영감이 된 이 그림에서 가학성이나 폭력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소설의 내용 역시 모피를 입은 여인이 남자를 채찍질하는 정도가 전부다. 흔히 ‘마조히즘’이라 하면 변태적이고 잔혹할 것 같지만 실상 이것은 미숙한 사랑과 집착이 좀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형태로 나타난 것에 불과하다.
영화 <모피를 입은 비너스>도 높은 수위의 가학적 행위를 전시하기보다 사랑의 불안감, 남녀 사이 권력의 역학관계에 대한 심리를 파고드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욕망의 구체화는 생각보다 유연하지 못하고 권력의 역학관계는 피상적으로 나열되는 데 그친다. 베를린, 베니스 등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아온 서정과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의 뮤지션이자 한국적 아방가르드 아티스트로 유명한 백현진의 연기는 이색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