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요원으로 살다 보면 대단히 호사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부호인 척 가장하는 임무를 맡을 때다.’ 이언 플레밍의 소설 <죽느냐 사느냐>의 첫 구절은 사람들이 제임스 본드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를 말해준다. 007 시리즈가 재미있는 것은- 특히 영화보다 소설이 더 그러한데- 그가 맡는 사건이 흥미로워서라기보다는 그의 라이프 스타일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여타의 다른 비밀 요원, 혹은 필립 말로 같은 탐정의 이야기가 재미있는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그들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절대로 따라할 수 없지만 너무도 따라해보고 싶은 스타일이 있다. 그들은 대개 명석한 두뇌와 날렵한 육체를 동시에 지녔으며, 직업이 있지만 자유로이 여행을 다니고, 돈에 연연하지 않지만 거부들의 사건에 연루되기에 질 좋은 옷을 입고, 최고급 요리와 술을 즐기며, 최고의 미녀들과 얽힌다. <맨 인 블랙>의 비밀 요원들은 외계인, 특히 변태인 외계인들하고만 싸우는 것이 임무이니 그런 면에서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그들에게도 부러워할 점이 한 가지 있다. 비밀 요원 자격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연스레 선글라스를 쓸 수 있다는 점.

선글라스는 사람을 몇배는 멋지고 특별하게 보이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하지만 일상에서는 자외선과 적외선을 차단하고 눈을 보호하는 본래의 기능을 따지다 보면 쓸 기회는 좀처럼 와주지 않는다. 좀 써볼 만하면 ‘이렇게까지 하기엔 햇빛이 너무 강하지 않잖아?’라거나 ‘이미 실내에 들어와 있네?’라거나 ‘주변에 쓰고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어. 괜한 시선 집중시키지 말고 벗자’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선글라스는 사실 튀어야 제맛 아닌가. <영웅본색>의 주윤발은 말할 것도 없고, 실내에서도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커다란 선글라스를 즐겨 쓴 재키 케네디, 알이 작고 동그란 선글라스로 히피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존 레넌을 보면 확실히 선글라스는 튀어야 제맛, 말하자면 무언가 색다른 느낌, 비일상적인 느낌이 들 때 제멋을 발휘한다. 물론, 저 사람 무슨 문제있나, 싶을 정도로 튄다면 문제겠지만.

사놓고 쓰지 못하는 선글라스가 있다면 자신이 <맨 인 블랙>의 비밀 요원이 되었다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영화에서 그들이 외계인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광선을 피하려고 수시로 선글라스를 썼듯이, ‘무미건조하게 습관화되어가는 스타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금은 한번쯤 선글라스를 써줘야 해’라고 생각해본다면? 강한 자외선 아래에선 선글라스, 라는 고정관념을 아예 무료할 땐 선글라스, 혹은 우울할 땐 선글라스, 점심 먹으러 나갈 땐 선글라스, 로 바꾸어본다면? 어쨌든 멋진 건 여한없이, 한번이라도 더 하고 사는 게 좋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