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 소녀들은 대부분 마녀다. 그들은 시간을 뛰어넘고 신들의 세계를 여행하며 하루아침에 노파가 되기도 하고 숲의 정령이기도 하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의 모모(이선) 또한 그들의 연대기에 기록될 법한 소녀다.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를 따라 친적들이 사는 외딴섬으로 이사 온 모모는 다락방에서 한권의 그림책을 발견한다. 책을 봉인한 끈을 풀어놓자 어느 날부터 다락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섬 밖으로 나가는 엄마를 따라나서는 이상한 형체가 보이기도 하고, 모모가 먹을 간식도 없어지고, 마을에서는 밭에 심어놓은 작물들이 서리를 맞는다. 드디어 모모 앞에 정체를 드러낸 이들은 세명의 요괴다. 모모가 봉인을 풀어준 덕분에 그림책에서 탈출했다는 이들은 모모의 눈에만 보인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이들의 좌충우돌 동거담이다. 우스꽝스러운 형체의 요괴들이 벌이는 갖가지 사고와 사건, 이를 무마하려는 모모의 활약이 웃음의 포인트다. 귀여움과 괴이함 사이의 중간에서 디자인된 이 요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식탐’이다. 먹을 것을 찾아 산으로 오르던 이들이 멧돼지를 잡아먹으려다 벌어지는 추격전은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긴박감 넘치는 장면이다. 한편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아버지를 보낸 모모가 요괴들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동네에 적응하고 엄마의 슬픔을 이해하는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1960년대 공안시대의 일본을 배경으로 인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드러냈던 <인랑>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다소 의아한 게 사실이다. 오히려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소녀와 정령, 자연, 성장을 모티브로 삼았던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작품들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더 많다. 이야기의 배경인 시오지마 섬은 실제로 <벼랑 위의 포뇨>의 무대였던 세토 내해를 모델로 삼아 디자인한 공간이다. 바다와 산이 있고, 산을 오르내리는 밭과 그곳을 헤집는 멧돼지들의 풍경이 눈에 익다면 이 또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모노노케 히메>의 작화를 담당했던 이의 역할 때문일 것이다. 특히 영화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요괴의 형체는 <모노노케 히메>의 어떤 캐릭터와 흡사하다. 개성이 돋보인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야기가 지닌 친숙한 정서와 디테일한 묘사는 소녀의 판타지에 묘한 심상을 불어넣는다. 캐릭터의 깊은 감정이 그림의 연기로 묻어난다는 점은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이 <인랑>에서 보여준 장점 그대로다. 김준현, 양상국, 안윤상 등 개그맨들의 더빙도 단순히 인기에 영합했다고 지적하기는 어려울 만큼 자연스럽다. 지브리의 작품이 아니라고 해도 지브리의 팬들이 굳이 마다할 작품은 아닌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