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성이라는 남자를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한다. 당대의 패션 포토그래퍼 중 한명인 김현성은 패션과 환경을 동시에 다루는 무가지 <오보이!>를 홀로 펴낸다고 했다. 뭔가 좀 의아했다. 나로서는 패션과 환경이라는 단어를 하나로 묶는 것 자체가 엄청난 역설처럼 들렸고, 포토그래퍼 혼자 매달 잡지를 만든다는 것도 어쩐지 믿어지지 않았다. 김현성의 얼굴을 보자마자 아무런 설명없이 모든 게 이해됐다. 그는 내가 서울에서 만난 남자들 중 가장 스타일이 좋은 남자였는데, 장식도 없고 채도도 낮은 낡은 옷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근사했다. 그가 017 번호의 모토롤라 휴대폰을 꺼낸 순간은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두손두발을 다 들었다. 이 남자가 만드는 잡지라면 뭐라도 함께해야겠다 싶었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오보이!>는 지금 한국 잡지쟁이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잡지로 자리잡았다.
<그린보이>는 김현성이 2009년 11월부터 2012년 5월까지 <오보이!>에 썼던 글과 사진을 묶고 새로운 글을 더해서 펴낸 책이다. 책은 현명한 소비, 채식, 동물복지 등 모두 여덟 가지 챕터로 나뉘어 있다. 챕터의 제목들이 너무 딱딱하고 고고하게 들린다고? 사실 김현성이 가장 경계하는 것 중 하나는 환경보호, 채식과 동물복지를 강압적으로 설법하는 일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이 종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믿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김현성의 말을 빌리자면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그린보이>는 제작 과정 역시 환경친화적이다. 불필요한 하드커버와 띠지는 없다. 내지는 재생종이로 만들어졌고, 잉크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눔글꼴 에코(나눔글꼴에 작은 구멍을 뚫어 잉크를 절약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글꼴)를 썼다. 갓 도착한 <그린보이>를 탁자 위에 툭 던져두었는데 코팅도 안된 얇은 표지 때문에 십년은 두고 읽은 책처럼 보였다. 어쩜. 이렇게 쓴 사람과 똑 닮은 책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