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가루 같은 모래로 뒤덮인 남아프리카 해변가. 피부색이 검은 여성들이 도망치고 있다. 절망에 가까운 그들의 숨소리와 희망의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스친다. 심해의 검은 눈동자가 보인다. 어디로 향하는 걸까? 이 여성들은 무엇에 쫓기는 것일까?
최근 개봉한 안토니오 팔두토 감독의 <이탈리아 영사>가 이탈리아 사회에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 영사>는 아프리카 여성들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스크린에 드러내며 아프리카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를 고발하고 있다. 유럽연합 국가들에서는 매년 성착취를 목적으로 하는 인신매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인신매매돼 유럽으로 건너온 뒤 성착취당하는 여성들은 마약, 에이즈, 조직범죄와 연결된다. 이런 사정으로 유럽연합은 이에 따른 피해자 보호와 범죄 방지 정책을 지속적으로 내놓고 있는 중이다.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는 성매매를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매매 행위 자체를 처벌하는 규정은 없다. 성을 판매하는 사람은 사회구조의 희생자인 탓에 처벌받지 않는다. 이들을 이용해서 호객행위를 하거나 성을 구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18살 미만 종사자를 고용한 성매매 업주는 6∼12년 징역형과 1만5천~15만유로의 벌금형에 처하게 된다. 이탈리아 시민권이 없는 18살 미만 종사자는 출신국에 있는 가족이나 당국에 인도된다. 이탈리아에서는 5만~7만명이 성매매에 종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이중 3분의 1이 외국인이다. 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몸을 파는 이 여성들은 지중해를 건너온 아프리카, 특히 나이지리아 출신 여성들이 대다수다. 이들은 손님에게 받은 돈을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화대의 대부분은 포주에게 돌아간다.
안토니오 팔두토 감독은 <이탈리아 영사>에서 한 아프리카 여성의 눈을 통해 이러한 사회문제를 고발한다. 최근 이탈리아 영화계의 주류를 이루는 코미디영화와 달리 사회문제를 직시한다는 점에서 평단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한편, 영화가 너무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많은 이탈리아 관객이 불편함을 내보이고 있다. 91년 데뷔작 <안테로페 코블레르> 이후 20년 만에 두 번째 영화인 다큐멘타리 <이탈리아 영사> 를 내놓은 안토니오 팔두토 감독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끔찍한 폭력에 방치된 아프리카 여성들
안토니오 팔두토 감독 인터뷰
-이탈리아 내부에서 찍지 않고 굳이 남아프리카까지 가게 된 이유는 뭔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최근 약 5만명의 불법 이민자를 양산해냈다. 이것은 사회문제를 야기했고 사회적 갈등을 일으켰다. <이탈리아 영사>는 이런 사회적 스트레스를 보여준다. 아프리카에서 주술사라는 혐의를 받고 있는 아프리카 여성을 소개받은 적 있다. 그때 이 영화에 대한 영감이 떠올랐다. 내가 받은 영감을 관객과 함께 나누고 싶었고, 아프리카를 같이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보고 들은 것 중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실들이 많은가 보다. =그곳의 사회적 현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그렇지만 현실을 보고 느끼는 것은 다른 문제다. 현실이 생각보다 심각해서 스탭들도 많이 괴로워했다. 특히 여성들이 신체적, 정신적 폭력에 방치되어 있다. 그걸 어떻게 영화로 풀어낼 것인지가 숙제였다.
-현실은 자주 변한다. 그곳의 현실도 변할 텐데…. =그렇다. 변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나 가치도 변한다. 이 영화를 제작하면서 변화하는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탈리아 영사가 실제로 이탈리아 억양이 섞인 악센트가 특이한 영어를 사용한다든지 하는 부분은 현실의 변화를 그대로 반영한 부분이다. 로마에 폰테 갈레리아라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아프리카에서 온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누구도 이들이 그곳에 있기까지의 과정을 생각지 않는다. 남아프리카에는 ‘Be Free’라고 하는 협회가 있고 이탈리아에는 ‘Cie’라는 조직이 있다. 어렵게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성매매를 하며 사는 이들이 경찰에 걸리면 이곳으로 넘겨지고, 7일 안에 있는 곳을 떠나야 한다. 이들이 고국으로 추방되면 이들은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