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을 보고난 뒤, 내 머릿속에 떠오른 문장은 뜻밖에도 루쉰의 것이었다. “희망은 본디 있다고 할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할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다. 원래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사람들이 다니면서 길이 되는 것”이라는 문장이 간절하게 머릿속을 맴돌았다. 왜인가.
2009년 1월20일 발생한 용산참사로부터 3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다큐가 제작되고 책도 나왔다. 그리고 이제 드디어 <두 개의 문>에 이르렀다. 기존 다큐들의 정서적 뜨거움을 간직한 채 매우 지적이며 섬세하게 진화한 이 영화는 21세기 대한민국 도심 한가운데서 벌어진 참혹한 사건의 배후에 대해 침착하게 따져 묻는다. 영화는 이분법을 넘어서 질문한다. 진압당하던 철거민과 진압하던 특공대원은 모두 ‘그것’에 의해 죽음으로 내몰렸다. ‘그것’은 무엇인가. ‘그’는 누구인가.
‘어떤’ 사건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내면에 깊은 상처를 남긴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처가 되는 그런 사건은 가능한 한 적을수록 좋다. 이미 발생한 사건에 대해서는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그래야 상처의 치유가 시작될 수 있다.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이 여기저기서 곪아갈 때 사회 전체에 죄의식이 내면화된다. 그런 사회의 행복지수는 결코 높아질 수 없다.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꾼다면, 무언가 해야 한다.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영화를 보러 가자. 알다시피 인디영화는 아무리 잘 만들어도 배급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 잡지를 펼쳐든 바로 당신이 힘을 모아주면 어려움을 헤쳐갈 수 있다. 전국 20여개 상영관에서 개봉한 이 영화의 상영관 수가 40개, 70개로 늘어난다면, 10만 관객이 이 영화를 봐준다면, 우리 사회 구성원 속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긴 이 사건의 책임자를 현실로 소환할 수 있다.
‘용산참사’의 진실이 궁금한 분들께 이 영화를 권한다. 이 땅의 모든 청년들에게 권한다. 자신의 아이들이 끔찍한 국가폭력으로부터 안전하게 살 수 있길 소망하는 모든 어른들에게 권한다. 친구, 애인, 가족, 회사 동료들과 이 영화의 티켓을 나누면 좋겠다. 학교나 일터에 영화 전단을 비치하고, 동호회나 회사의 단체회식 뒤 영화관에 가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인들이 저마다의 팬클럽 회원들과 이 영화를 지켜주면 좋겠다. 영화가 대중 속에 신선한 혈액을 공급하는 ‘예술’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영화에 대한 순정한 열정을 가진 인디정신 때문이다. 상업영화의 질 좋은 개화를 위해서도 인디정신은 영화인 스스로에 의해 적극 보호되고 지원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 내면화된 상처를 치유하고자 하는 이 ‘작은 영화’의 지지자로 스타와 연예인들이 나서준다면 아, 대중 보기에 참으로 아름다울 터!
이것은 일종의 21세기적인 문화운동, 발랄하고 유쾌한 일상의 무브먼트다. 우리 이웃들이 겪은 참혹한 상처에 가장 문화적인 방법으로 개입하자. 우리의 입으로 말하자. 문에 대하여, 상처의 치유에 대하여, 어둡지만 그 끝에서 만나게 될 환한 출구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면 길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