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힐>에서 휴 그랜트의 엉뚱한 룸메이트 스파이크라고 설명하면 제일 빠르겠다. 리스 이판은 TV와 영화를 넘나드는 코믹한 연기가 주를 이루지만, <한니발 라이징>에서의 냉혹한 범죄자 같은 면모도 시도하는 다채로운 얼굴의 배우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 그가 연기한 코너스 박사는 스파이더맨 리부트의 핵심인물이다. 피터 파커의 아버지와 연결된 비밀의 중심에 서 있는 내면적 연기와 동시에 악당 리자드로서 액션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야 했다. 인터뷰 내내 우리에게 익숙한 스파이크의 모습보다 코너스 박사의 진지함을 더 보여줬지만, 몸동작까지 아끼지 않으며 어릴 적 스파이더맨의 추억을 말할 땐 영락없이 스파이크가 연상되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악당 역할이야말로 블록버스터 엔터테인먼트의 핵이다. =판타스틱했다. 훨씬 돈을 많이 주지 않나! (웃음) 정말 큰 영광이며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했다.
-주로 저예산 작업에 참여해왔는데 이번 작업은 스케일이 크다. =사실 영화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영화를 하든 연기 자체에 임하는 자세는 다르지 않다. 물론 큰 영화는 많은 스탭이 참여하고 이렇게 한국까지 오게 해주지만, 그외의 과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영화는 결국 이야기이고 관객과 어떻게 호흡하고 어떤 감정을 100%를 넘어 150%까지 전달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리자드에게 지구 정복의 야욕 같은 건 없다. 전형적인 악당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게 바로 내가 이 캐릭터를 봤을 때 느낀 감정이다. 원작 만화를 봐도 리자드는 그렇게 나쁜 인간이 아니다. 나는 코너스 박사가 미치광이라거나 분노에 휩싸인 과학자가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을 가진 진실한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악당이 아니라 자신에게 없는 팔을 찾고자 하는 욕구, 더 나아가 팔다리가 없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이었다. 피터 파커와의 유대감을 표현하는 것도 중요했다. 코너스 박사는 결국 피터 파커의 궁금증을 풀어줄 열쇠였다.
-더 나쁠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그는 선한 본성을 드러낸다. =진정한 악당은 코너스가 일하는 오스코프사라고 생각한다. 오스코프사는 아직 증명되지 않은 기술을 비밀리에 실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코너스 박사는 이를 용인하지 않으려는 도덕적인 잣대가 있다. 결국 스스로가 실험용 쥐가 되고 희생을 택하는 방식으로 악에 맞선다고도 할 수 있다.
-<휴먼 네이쳐> 때 원숭이인간을 했으니, 거대 도마뱀(리자드)도 낯설지 않았겠다. =그래서 무척 재밌었다. <휴먼 네이쳐>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지 않는 분장이었다면 이번엔 업계 최고의 스탭들이 한자리에 모여 특수분장을 했다. 내면에 있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수 같은 모습을 찾아내야 하는 역할이었다.
-외적 수고도 굉장히 클 수밖에 없다. 스파이더맨 분장이 두 시간 걸렸다던데, 리자드는 어땠나. =코너스 박사를 연기할 땐 그냥 팔에다 초록색 양말 하나를 끼면 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인간에서 리자드로 리자드에서 인간으로 왔다갔다 하는 분장은 꽤 어려웠다. 촬영 전에 스튜디오에서 치밀하게 주조 작업을 했다. 분장은 한번 하는 데 대략 7∼8시간이 걸렸다. 4∼5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한꺼번에 작업을 하는데, 한번 시작하면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꼬박 분장을 해야 했다. 변신 단계에 따라서 분장의 정도도 달라져야 했다. 변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생각도 리자드에 맞춰져서 연기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스파이더맨의 광팬이라고 했는데, 팬으로서 이번 리부트를 어떻게 평가하나. =어릴 땐 만화책 뒷면에 있는 스파이더맨 마스크를 오려서 색칠도 하고 눈에 구멍을 뚫어서 얼굴에 쓰고 집 안을 돌아다니면서 스파이더맨 흉내를 내며 즐거워했다. 스파이더맨이 벌써 50살이다. 슈퍼맨이 다른 행성에서 와서 초능력이 있고, 배트맨은 백만장자라면 스파이더맨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옆집 사는 소년 같은 캐릭터다. 처음 제작자와 감독을 만났을 때부터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스파이더맨을 만들자는 의견에 동의했고, 그 부분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도마뱀 꼬리는 잘라도 재생한다. 다음 편에도 다시 등장할 수 있는 건가. =오! 아직 그건 모르겠다. (웃음) 우선은 수잔 비에르 감독과 <세레나> 촬영을 막 끝냈다. 1920년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원작인 작품으로 정말 스릴 넘치는 로맨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