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의 흔적이 남은 이스트사이드갤러리 뒤편, 슈프레 강가 모래밭에 고철과 나무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과 마당에선 기이한 퍼포먼스 이벤트가 연일 넘쳐난다. 진흙에 뒹굴기도 하고, 얼음을 깎아 홈을 판 곳에 술을 따라 마시고, 테크노 음악과 색색의 조명 밑에서 가지각색의 가장행렬과 같은 복색을 한 사람들이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가히 디오니소스의 향연을 방불케 하는 축제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라는 범주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니체의 말처럼 그야말로 ‘삶이 예술’이다. 베를린의 전설의 클럽 ‘바25’의 파티장면이다.
몇년 전 <뉴욕타임스>가 ‘세계에서 가장 쿨한 도시’로 찬사를 보낸 이래 세계 곳곳에서 보헤미안, 예술가가 베를린으로 몰리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도심에 고급 주택화와 상업화가 가속화되는 가운데 언제까지 다양한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버틸지는 알 수 없다. ‘80년대 뉴욕과 같은 분위기’라는 표현에 걸맞은 ‘바25’도 지난 2010년 상업화에 밀려 철수해야 했다. 지난 5월 초, 신화가 되어버린 ‘바25’의 실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 <바25: 시간 밖의 날들>(Bar25: Tage außerhalb der Zeit)이 개봉했다. 사회, 정치문제는 잊어버리고 재미에만 몰두하는 ‘재미사회’를 체화한 듯 퇴폐와 향락의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한편 일반인에게는 운영진, 방문객과의 인터뷰를 통해 꽉 짜인 일상을 탈출하는 해방구일 수도 있겠다는 다른 시각도 제공한다.
‘바25’의 운영진은 히피와 같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을 맡은 브리타 미셔와 나나 유리코도 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바25’의 파티장면뿐만 아니라 클럽 방문객, 운영진과의 인터뷰로 파티 무대 뒤의 생활, 고민, 위기 등도 맛보기로 보여준다. 클럽 건물도 직접 짓고, 철거도 직접 하는 이들 공동체의 기술과 솜씨에도 혀를 내두르지만 재미와 즐거움으로 가득 찬 파티의 모습과 큰 대조를 이룬다. 또 영화는 챕터마다 루이스 캐럴, 마크 트웨인, 오스카 와일드의 인용구를 삽입해 철학적 반성을 유도한다. 기이한 이벤트가 넘치는 창조적 파티를 경험하고 싶다면 또 예술적 삶에 대한 고찰을 원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진짜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브리타 미셔 감독, 나나 유리코 감독과의 인터뷰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브리타 미셔_독일 공영방송 <아에르데>와 <아르테>에서 일하며 여러 차례 ‘바25’ 관련 영상을 찍었다. 2007년 방송국으로부터 자유분방한 파티를 하는 클럽 이상의 것을 보여주는 영화를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나나 유리코는 이미 클럽 창립부터 카메라로 ‘바25’를 기록해놓은 터라 함께 일하게 됐다. 나나 유리코_2004년 클럽 문을 열 당시 나는 ‘우리가 클럽 역사를 새로 쓴다’는 생각에 감격스러웠다. 그전부터 나는 전자음악, 삶의 문화를 카메라로 기록하고 있었다. 이게 시들해지던 참에 ‘바25’를 영화로 찍는 사회문화 프로젝트에 집중하게 되었다. ‘바25’는 요세프 보이스식 사회적 조형물이라 할 만하다. 진짜 오아시스를 우리가 만들었다. 또 보통 베를린 클럽문화와 다른 성인과 아이가 함께 놀 수 있는 놀이터였다.
-촬영하면서 큰 어려움은 없었나. =브리타 미셔_7년간에 걸친 장기 다큐멘터리라 끝은 알 수 없었고 예산도 불투명했다. 게다가 나나와 나는 이 촬영기간 중 가정을 꾸렸다. 이 영화에 피와 땀이 서려 있다. 나나 유리코_어려움은 없지만 도전은 있었다. 가령 저녁시간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찍는 것, 수많은 인파 속에서 의사소통이 잘 안됐던 점, 타이밍을 잘 맞추는 것 등 도전의 연속이었다.
-바25가 왜 특별한가. =브리타 미셔_‘바25’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지구의 창조적 인간들을 끌어모은 공간이었다. 에너지로 가득 찬 삶의 느낌, 그 자체였고, 우리는 거기에 도취됐다. 이 정신이 영화에 녹아들게 하려고 애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