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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 논쟁을 즐겼던 비평가의 교본
송경원 2012-06-26

영화비평가 앤드루 새리스 타계

“논리적이며 일관된 견해로 스크린에 이야기를 전개시킬 수 없는 무능을 재확인시켰다. 내가 본 가장 끔찍한 영화 중 하나.” 20세기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대한 평이다. 20세기 최후의 신화적 존재라고까지 불리는 큐브릭 감독에게 이처럼 잔인한 평가를 날린 사람이 다름 아닌 영화 작가이론을 확립시킨 비평가 앤드루 새리스라는 사실은 왠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지극히 앤드루 새리스답다. 자기 취향에 부합하지 않는 작품에 채찍질을 가하는 데 한치의 망설임도 없었던 이 논쟁적인 비평가는 비평과 그에 따른 비난, 어느 쪽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영화 작가주의를 통해 영화에서의 감독의 역할과 입지를 다져주었던 위대한 비평가 앤드루 새리스는 지난 수요일 맨해튼의 세인트 루크스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향년 83살, 27살에 처음으로 <이스트 빌리지>의 전초였던 <Film Culture>에 원고를 기고한 이후 단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었던 시끄러운 그의 펜은 56년 만에 처음으로 그리고 영원히 휴식을 고했다.

앤드루 새리스에게 영화는 운명이었다. 1928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어머니의 자궁과도 같은’) 극장에 가길 즐겼고 퀸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그가 보고 자란 것은 아카데미 시상식이나 뉴욕영화비평가협회 시상식 같은 행사였다. 51년 컬럼비아대학을 졸업한 뒤 아무 데도 매이지 않고 파리로 건너간 그는 고다르와 트뤼포 같은 <카이에 뒤 시네마> 무리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영화비평에 발을 담그게 되었다. 당시 영화비평은 ‘혁명’이라는 시대 분위기의 정점에 있었고 타고난 논쟁가인 그에게 이보다 적합한 환경은 없었다.

영화제작의 중심을 감독에게 맞춰야 한다는 당시 프랑스의 작가 정책은 존 포드, 하워드 혹스 같은 미국 감독들의 작품을 근거로 전개되었다. 앤드루 새리스는 이를 다시 미국으로 가져오면서 일종의 선언과도 같았던 작가주의를 정교한 작가이론으로 변형시킨다. 그는 자신의 기념비적인 연구서 <The American Cinema>를 통해 스튜디오의 통제하에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유지해나간 감독들을 꼼꼼하게 분석, 분류해 나갔다. 11단계에 이르는 악명 높은 분류로 많은 이들의 반발과 비난을 불러온 이 책은 논쟁과 비판에 거리낌없는 앤드루 새리스만이 쓸 수 있었던 영화에 대한 논쟁적인 가이드다. 수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켰고 그가 남긴 작가이론은 많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이론’으로 명성을 얻은 그였지만 정작 자신은 죽는 그 순간까지 논쟁적 글쓰기를 지향한 비평가였다. 스탠리 카우프먼, 매니 파버, 존 사이먼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그들과도 논쟁을 즐겼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2009년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매우 논쟁적이고, 모두가 모두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입니다”라고 했던 그의 말이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흔들림없는 자신감, 예술에의 엄격한 태도, 기민하고 예리한 글쓰기, 비평가의 교본과도 같은 앤드루 새리스의 삶은 여전히 1960년의 ‘혁명’을 품고 있다. 죽음만이 가능하게 했던 그의 침묵이 유난히 허전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