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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진의 미드 크리에이터 열전] 소수자의 목소리를 드러내다
안현진(LA 통신원) 2012-06-29

<트루 블러드> <식스 핏 언더>의 앨런 볼

<아메리칸 뷰티>로 오스카 각본상을 수상한 작가이고, <HBO>에서 크리에이터이자 작가로 <식스 핏 언더>와 <트루 블러드>를 만든 앨런 볼은, 이 시대의 TV시리즈 크리에이터를 꼽을 때 빠질 수 없는 이름이다. 크리에이터로 참여한 TV시리즈 두편이 모두 크게 성공한 덕분이다. <트루 블러드>처럼 따로 원작이 있는 경우라면 크리에이터 대신에 디벨로퍼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작자에게 창작의 공을 돌리는 의도에서이다. 하지만 원작 소설인 샬린 해리스의 <남부 뱀파이어 미스터리> 시리즈를 읽은 사람이라면 <트루 블러드>가 전혀 다른 생명체라는 것, 그렇기에 앨런 볼이 크리에이터라는 직함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1인칭 시점에서 전개된 소설을 TV 각본에 적합하도록 각색했음은 물론, 주요 캐릭터마다 각각의 역사를 만들어주었다. 줄거리는 원작에 충실하지만 특히 캐스팅에 공을 많이 들였다. 주연배우 대부분이 뉴질랜드, 호주, 영국, 스웨덴 출신의 배우들로 구성됐는데, 원작 소설을 읽고 느꼈던 강렬함을 완성할 완벽한 퍼즐 조각 하나 하나를 그의 손으로 골라내기 위해서였다.

“<트루 블러드>는 나의 경력뿐 아니라 내 인생의 하이라이트”라는 말처럼 <트루 블러드>는 이전까지 그가 탐구한 적 없는 장르물이다. 시트콤 작가로 경력을 시작했지만 이름을 알린 <아메리칸 뷰티>나 <식스 핏 언더>는 유머러스하면서 진지한 드라마였다. 확실히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을 관통하는 테마는 <트루 블러드>에 이르러 좀더 공고해진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처럼 판타지 호러 장르의 존재들이 뒤섞여 있지만 애초에 해리스의 소설에서 그를 사로잡았던 요소는 그의 작품에서 일관된 주제인, 죽음이 아니었을까. 그는 13살 때 차 사고로 누나를 잃었다. 사고 당시 그는 뒷좌석에 타고 있었다. “죽음이 그 추악하고 커다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 사고 뒤 우리 가족의 중심에는 늘 죽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일까, 앨런 볼의 이야기에서 존재하는 죽음은 어둡고 우울하기보다 일상에 가깝고 종종 매력적으로도 그려진다. 매회 죽음을 이야기하면서 삶을 잊지 않는 <식스 핏 언더>처럼, 앨런 볼의 장기는 동성애나 종교 같은 민감한 주제를 도발하되 공존하는 매력을 부각하는 것이다.

인터뷰를 통해 살펴본 앨런 볼은, 매번 자신의 이름 뒤에 가려진 다른 이들의 공을 들추어내는 데 열심이다. 작가실의 작가가 8명이면 8명 모두의 이름을 기억해 언급하기를 잊지 않는다. 이렇듯 작가들에 대한 공치사에 열심인 이유는 크리에이터라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그 자신을 언제까지나 작가로 생각하리라는 신념 때문일 거다. “글쓰기는 혼자 할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경험이다. 외롭고, 어렵다. 그렇지만 나는 언제나 글을 쓰고 있을 것이다. TV에서 글을 쓸 수 없다면 연극 무대로 갈 것이고, 그조차 어렵다면 소설을 쓸 것이다. 글쓰기의 아름다운 점은 다른 이의 허락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앨런 볼은 시즌5를 마지막으로 <트루 블러드>를 떠난다. 아쉽지만 크리에이터가 쇼를 떠나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지금 그는 <HBO>의 자회사인 <Cinemax>에서 방영될 새로운 드라마를 준비 중이다. 펜실베이니아의 아미시 커뮤니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미스터리 범죄물로, 살해당한 보안관 행세를 하는 전직 사기꾼이 그 스스로의 정의를 실현해나간다는 것이 줄거리다. 전작들에서 성, 종교, 인종 등의 주제를 통해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온 그가 배타적 커뮤니티를 다루는 새 드라마에서 어떻게 그의 장기를 드러낼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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